[데스크의 눈] 요즘 중앙정부 뭐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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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곳은 제주도 최남단. 그곳에 오르면 푸른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른 용암(熔岩)절벽과 켜켜이 가로누운 화산 단층,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마라도와 가파도가 한두 걸음에 달려올 듯 시원하게 펼쳐진다.

비경(□境)이다.

해변에 우뚝 선 송악산., 그는 한라산의 기생화산이다.

이 녀석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분화구 속 분화구' 구조를 가졌다. 중국.일본의 화산지질학자들도 여러 차례 찾아왔다. 수중 폭발로 만들어진 데다 화산 형성과정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게끔 단층이 드러나 있다.

손인석(孫仁錫)박사(제주화산지질.동굴연구소), 원종관(元鍾寬)교수(강원대 화산지질학)등 전문가들은 "지질학적인 자연사박물관" 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이 산 분화구를 갈아엎는 대대적 개발사업이 곧 착수될 전망이다.

제주도청은 1994년 송악산 일대를 관광지구로 지정하면서 산 대부분은 '절대보전지구' 로 지정하고 산 아래 취락지구.임야만 개발토록 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분화구 안에' 49만평이나 되는 종합레저타운을 짓겠다는 남제주리조트개발의 신청에 지난해 12월 30일 허가를 덜컥 내주었다. 물론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욕심을 냈을 것이다. 주변 주민도 원한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1월 12일자 26면 보도를 시작으로 이 허가의 파행성을 잇따라 고발해왔다. 제주도가 방침을 1백80도 바꿔 절대보전지구인 분화구 내에 사업허가를 내준 부당성을 강조해왔다. 화산지질 특성상 지반이 취약해 안전문제까지 있다.

한라산 백록담 안에 호텔.콘도.물놀이공원.쇼핑센터.식당 등을 짓는다면 누구나 아연실색할 것이다. 송악산 개발은 이같은 발상이다.

전문가들은 계획을 철회하거나 적어도 레저타운을 관광지구인 산 기슭에 짓도록 변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분화구 일대는 생태관광지로서 보전해야 상품성도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현안에 관련이 있는 중앙정부 부처들이 꿀먹은 벙어리가 돼 있는 점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제주도의 5개 시민단체와 지질.해양학계 등이 1월 말 청와대.감사원.환경부.문화재청에 경위조사와 시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특혜 의혹도 제기했다. 특히 문화재청에는 분화구 일대를 문화재보호법상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느 부처도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우선 감사원은 "시민단체의 건의문을 받은 바 없고 조사도 안하고 있다" 고 말한다. 그러나 제주도로부터 허가 관련 문건을 송부받은 사실은 확인되고 있다.

이 정도의 환경문제면 조사단을 보냈을 환경부도 손을 놓고 있다. "제주도개발특별법(91년 제정)상 제주도 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는 환경부가 간여할 수 없게 돼 있다" 는 푸념이다.

웬 일인지 이 법은 '특례규정을 두어 환경부장관을 거치지 않고 제주도지사가 환경영향평가를 전결할 수 있게 해놓았다.

이 특별법은 나아가 "이 법으로 개발계획이 승인되면 산림법 등 26개 법에 의한 허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 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조항도 갖고 있다. 제주도의 개발사업은 계획도, 심의도, 승인도 제주도지사가 하게 돼 있는 것이다.

환경장관은 국무회의에서 이의제기를 할 수 있으나 그대로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사태 후 현지조사까지 했다. 그러나 "문제는 있지만 주민이나 자치단체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게 정부 방침" 이라고 얼버무리고 있다.

'주민 눈치보기식 행정' 이 아닌가. 문화재청은 "조사 결과 분화구 일대를 천연보호구역이나 기념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공감한다" 면서도 손을 놓고 있다.

총리실 국무조정실도 "조사는 하고 있으나 아직 문제점이 확정되지 않았다" 는 흐릿한 자세다. "허가 제도상의 개선 필요는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고 말하는 정도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새 천년의 출발점에서 중앙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선거를 의식해서인가. 이럴 때 나서야 하는 게 총리의 역할이 아닌가. 천연보호구역이 될 정도라면 국가적 자산이다.

김일 <전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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