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원두인지, 어떻게 볶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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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잔에 놀을 담아 마시는 사람들은 짧은 가을을 가슴에 담아두고 일 년 내내 산다.’

- 원재훈의 『바다와 커피』中


커피를 소재로 두 권의 소설을 펴낸 원재훈(48·일산서구 중산동) 작가는 커피 매니어다.“커피 취향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그는 여성적인 맛의 에티오피아 이가체페를 즐긴다. 아침마다 작업실에서 직접 로스팅(커피 원두를 볶는 과정)해 마실 정도로 커피에 일가견 있는 그가 일산의 단골 커피집을 귀띔했다.

고집스런 커피맛, 코/델/리

원 작가의 소설 『바다와 커피』의 배경이 된 커피집이다. 지순하고 치명적인 사랑을 커피의 맛과 향에 빗대 풀어간 이 작품엔 ‘코델리(사장 이정훈)’와 주인장 ‘송곡(松谷·이 사장의호)’이 그대로 등장한다. 소설 속 에피소드도 이곳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다. 인근에 작업실이 있던 원 작가가 목격하거나 귀담아 들은 것들이다.

무역업을 하던 이 사장이 이곳의 문을 연 것은 지난 2000년. 당시 로스팅 커피집은 국내에 스무 곳 남짓했다. 당연히 일산에선 이곳이 유일했다. 커피를 ‘약’ 삼아 마신다는 암환자를 단골로 둘 만큼 이름난 커피맛은 이 사장의 고집스러움으로 만들어진다.

생산된 나라, 지방, 농장, 수확시기, 수확 시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생두의 고유한 성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로스터(로스팅하는 사람)의 역할이라는 게 이 사장의 신념. 그는 오감을 동원해 로스팅한다. 커피가 볶아질 때 나는 소리에까지 귀를 기울인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갓 볶은 커피를 밀폐 후 섭씨 2℃ 정도에서 차게 보관하는 것도 개점 이후 줄곧 지키고 있는 원칙이다. 물줄기가 커피 입자에 살포시 내려앉듯 핸드드립하는 과정도 이곳 커피맛의 중요한 요소다. 그날 그날 가장 신선한 커피를 ‘오늘의 추천 커피’(5000원)로 내놓는다. 마두도서관 맞은편 산성교회 뒤. 일요일 휴무.

▶문의= 031-904-8585


정직한 커피맛, 카/페/테/로

요즘 원 작가가 맛들이기 시작한 케냐 마사이AA 커피를 즐기는 곳이다. 아침마다 커피 볶는 냄새가 끊이지 않는 이곳은, 우연히 맛본 에스프레소의 맛에 반한 박민규 사장이 ‘커피 한 잔이 주는 행복’을 나누고자 2007년 문을 열었다.

‘커피 내리기엔 정답이 있다’고 주장하는 박 사장이 생두의 품질 못잖게 중요시하는 것은 로스팅이다. 생두의 성질과 보관상태에 따라 볶는 강도가 달라야 한다는 것. 약성 커피는 약하게, 강성 커피는 강하게 볶아야 생두 고유의 맛이 살아난다. 탄자니아의 신맛에서 나오는 단맛을 느끼려면 약하게 볶아야 한다. 중성인 브라질 산토스를 강하게 볶으면 쓴맛만 난다. 갓 볶은 커피가 가장 신선하고 맛있다는 박 사장은 주문 즉시 원두를 가는 원칙도 지킨다. ‘테로’는 콜롬비아어로 ‘커피농장에서 일하는 젊은 농부’라는 뜻. 시럽까지 직접 만들 정도로 정직하게 커피맛을 내겠다는 박 사장의 의지가 담겼다.

이곳에선 개점 초부터 꾸준히 커피 아카데미(취미반6회 30만원)가 진행되고 있다. ‘누구나 제대로 된 커피맛을 봤으면’ 하는 바람에서 커피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만큼 박 사장에겐 아카데미가 갖는 의미가 크다. 1대 1 수업을 고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산백병원 옆. 일요일 휴무.

▶문의= 031-911-0578


자유로운 커피맛, 터/치/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이가체페(연인), 콜롬비아 수프리모(우아한 중년), 브라질(주연보다 훌륭한 조연 배우), 탄자니아 킬리만자로AAA(견고한 고독), 케냐AA(예술가), 에티오피아 모카 하라(여름 소년)…. 터치아프리카 메뉴판 커피명 옆엔 또 다른 이름이 붙어있다.

‘볶는다(로스팅)’는 말의 어감에 끌려 커피공부를 시작하고 겁 없이 커피집까지 낸 주필숙 사장이 난생 처음 맛본 각 커피의 맛을 표현한 것이다. 커피맛이 제각각인 것처럼 ‘커피는 누가 만드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게 주 사장의 생각이다.

생두의 생산지와 수분정도, 건조방법, 로스터기에 따라서도 맛이 좌우된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읽어내 최적의 커피맛을 내는 것은 로스터의 몫이다.

찬물로 12~16시간 추출한 후 냉장보관하는 더치커피(5000원)는 흔히 맛볼 수 없는 커피로 1일 20잔 한정판매한다. 찬물로 내려 카페인이 거의 없고 맛이 깔끔하다. 원 작가를 비롯한 단골 문인이 많다. 같은 건물에 출판사 위즈덤 하우스가 들어서있다. 일산문화공원(롯데백화점 일산점) 옆.

▶문의= 031-902-6972 


[사진설명]하루 6~7잔의 커피를 즐기는 원재훈 작가의 단골 커피집 ‘코델리’. 그는 이곳을 배경으로 소설도 썼다.

<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

< 사진=김진원 기자 jwbest7@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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