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탐험] 옛맛 되살리는 '무교동 낙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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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낙지 한 접시, 막걸리 한잔에 시름 한아름 담아내며 밤은 깊어가고…' . 나이 지긋한 시민들이라면 무교동 낙지 집 백열등 아래 낡은 탁자에 휘갈겨졌던 무명시인의 이 같은 넋두리를 한번쯤은 읽었을 법하다.

도심 재개발 바람에 밀려 1980년대 중반 이후 2~3곳을 남기고 사라졌던 '무교동 낙지집' 이 최근 다시 돌아오고 있다.

입안을 얼얼하게 하는 매콤한 맛을 기억하는 손님들의 향수에 힘입어 최근 1년 동안 낙지 집 2곳이 새로 생겨났다.

원래 이들 낙지 집은 60년대 초 청계천 복개 이후 종로구 서린동 일대 주택가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섰었다.

그러나 인접 무교동이 당시에 워낙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덩달아 '무교동 낙지집' 으로 불리게 됐다.

한때 20여 곳이 성업했던 이 곳은 외국인들도 즐겨 찾던 명소였다. 특히 주머니가 가벼운 연인들이 즐겨 찾던 사랑의 공간이기도 했다.

강남 등 서울 곳곳의 '무교낙지집' 들이 서로 원조를 내세우는 것도 옛 명성을 이용한 상술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무교동 본바닥에서 영업했던 '1세대' 들이 가업(家業)의 형태로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주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기호 변화에 따라 맛도 달라졌다. 옛날의 매콤한 맛이 다소 순해졌고 젊은이들을 겨냥한 다양한 메뉴가 개발됐다.

다시 생겨나는 무교동 낙지집들이 과거의 영예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나 추억을 자극하는 실마리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무교동 상가변영회 관계자는 "톡 쏘는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노인이나 해외교포들이 많다" 고 말했다.

김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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