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장 이 문제] '못 먹는 약수' 수년간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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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에 사는 박승서(37)씨는 얼마 전 옛날 생각만 하고 고향 인근의 청원군 부용면 부강약수터에 들렀다가 몹시 실망했다. 약수터 관리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떠먹는 사발이 있는 걸로 보아 아직 이용객이 있음을 알 수 있었지만 철분 때문인지 배수구가 빨갛게 물들 정도여서 수질에 믿음이 안 갔다. 그러나 수질검사표는 어디에도 없었다. 궁금해진 그는 면사무소에 전화했다. "예전에 음용불가 판정이 났다"는 면사무소직원에게 "안내 표지판이 왜 없느냐"고 따진 그에게 돌아온 답은 "군청 소관이어서"라는 말뿐이었다.

박씨를 화나게 한 건 군의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부강약수는 철분이 많이 함유돼 사람에 따라 해로울 수도, 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먹는 물'로 지정되지 않아 수질검사를 안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럼 그런 내용이라도 적어 안내문을 걸었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부강약수는 피부병과 위장병에 좋다는 소문으로 한 때 나이트클럽까지 들어설 만큼 청원군의 대표적 명소로 부근이 번창했지만 지금은 식당 한 곳만 명맥을 유지할 정도로 썰렁해졌다. 수질이 점점 나빠졌기 때문이다. 실제 이곳은 2001년8월 검사결과 음용불가 판정이 내려져 폐쇄된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엔 하루에 수십명씩 물을 떠가고 인근의 부강공고 학생들도 하교길에 이곳에서 물을 떠먹곤 한다. 당시 설치했던 폐쇄 안내문이 얼마 안가 사라졌는데도 지금까지 복구되지 않은 결과다. 게다가 페인트로 쓴 글씨가 벗겨지지기 직전인 이곳 약수터 안내판에는 ▶소화불량, 위장병에 좋고 ▶당뇨병, 신부전증에 특효인데다 ▶장기복용하면 산성체질을 알키리성으로 변화시킨다는 등 효능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어 방문객들을 현혹하고 있다.

2001년 이후 먹는샘물처럼 정기적인 수질검사를 하지 않던 청원군은 최근 민원이 일자 충북도 보건환경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했다. 6일 나온 분석결과는 부적합이었다. 철분이 기준치의 35배인 10.8㎎/ℓ 검출된 것을 비롯해 불소, 망간, 탁도, 색도, 경도 등 8가지가 기준치를 훨씬 웃돌았다. 알칼리성으로 체질을 바꿔준다는 안내판과는 달리 이 물은 산성(ph6.2)으로 나타났다.

철분을 과다섭취하면 소화장애나 구토, 설사증세가 나며 미국에서는 파킨슨씨병 위험도 보고된 바 있다.

청원군 관계자는 "약수는 원래 먹는 샘물같은 식수와는 달리 수질 기준이 없지만 음용 가부를 가릴 땐 먹는샘물 기준을 적용한다"며 "약수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 한 폐쇄하기가 어렵지만 안내판을 세워 수질기준 초과 사실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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