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BOOK]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회엔 희망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카스 선스타인 지음
박지수·송호창 옮김
후마니타스
368쪽, 1만5000원

“사람들이 마음 놓고 믿는 것일수록 온 세상 앞에서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1806~73)의 『자유론』에 나오는 말이다. 이 부분에서 밀은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이야기를 꺼낸다. 1997년 나온 알 파치노·키아노 리브스 주연의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은 이 용어를 오해하게끔 했는데, 원래 ‘악마의 변호인’이란 ‘진실 검증자’를 말한다.

중세시대 가톨릭은 성인(聖人) 심사 과정에서 일부러 후보자의 부도덕한 행위만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일군의 신부들을 뒀다. 이 ‘악마의 변호인’들의 검증을 거쳐 하자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야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상·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자유론』은 말한다.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성인이라 하더라도, 악마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온갖 험담이 혹시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 보기 전에는 그런 영광된 칭송을 받을 수 없다.”

이견을 억압하는 사회,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집단은 결국 도태된다. 독재자의 권력에 의해서만 이견이 억압되는 건 아니다. 다른 이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자 하는 심리도 ‘쏠림 현상’을 만든다.

저자 카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넛지』(리더스북)의 공저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현재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하고 있지만 좌파적 쏠림 현상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특히 대학가에선 ‘정치적 올바름’이란 형태로 좌파적 견해에 동의해야 한다는 압력이 있는데, 이런 현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주류의 생각에 찬동하는 학생들이라고 꼬집는다. 그들의 생각이 제대로 검증될 기회를 잃기 때문이다. 이견의 억압은 정치적 파탄으로만 귀결되는 게 아니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건축자재 소매 유통업체로 유명한 ‘홈 디포’의 창립자 버니 마커스는 “이견을 제시하는 것이 장려되지 않는 이사회에서는 절대 일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책은 다양한 심리학 실험, 사회과학 이론과 판례 분석 등을 통해 어떻게 이견이 억압되고 그 결과는 무엇인지를 밝혔다. 국내 편집진이 꼼꼼하게 만든 ‘용어 해설’만 읽어도 좋은 공부가 된다.

배노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