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603.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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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13장 희망캐기.38

주문진을 나선 일행들은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북쪽인 양양에 이르는 7번 도로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양양에서 다시 외설악의 오색 가는 국도를 타는가 하였더니, 오래지 않아 왼쪽으로 트인 56번 국도로 들어섰다. 일행 중 대부분은 그들이 강원도 내륙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 것인지 몰라 남의 뒤통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으나, 박봉환과 승희만 얼추 길눈을 꿰고 있었다.

남쪽으로 사뭇 달리면, 창천과 홍천에 닿게 되는 그 국도는 포장작업을 끝낸 지 삼년밖에 안되는 도로인데다 워낙 오지에 숨어 있어 휴가철에도 이용 여행객은 드물었다.

외설악 길을 버리고 왼편으로 들어서면, 금방 길 아래로 깊숙하게 바라보이는 공수전계곡과 용소골계곡 같은 절경을 만나게 된다. 더 내려가면 왼편으로 선림원 절터와 약수터를 끼고 있는 갈천리라는 작은 산협마을과 마주쳤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어 산 이름에도 약수산이 있고 계곡에도 약수계곡이 있을 만치 약수터가 흔한 곳이었다. 갈천리까지는 비교적 시야가 트인 곧은 길이지만, 갈천리에서 구룡령이 시야에 들어오고부터 강원도 물안개의 원산지로 일컫는 계방천을 만나기까지 8㎞ 정도는 양의 창자처럼 굽은 길만 달려야 했다. 주문진에서 보면 설악산국립공원 쪽으로 올랐다가 다시 오대산국립공원 쪽으로 내려온 셈이었다. 어쨌든 일행은 구룡령을 벗어나고부터 그때마다 산코숭이를 물고 늘어지는 계방천의 지류를 요리조리 비켜 명개리의 삼봉약수터를 지나서 월둔골 들머리에 이르렀다. 외설악 들머리에서부터 40㎞ 정도를 줄곧 달려온 셈이었다.

이 산협오지를 두고 사람들은 삼둔 사가리로 부른다. 방대산.구룡덕봉.개인산.침색봉.거칠봉.갈전곡봉.맹현봉같이 사람의 어깨 너머로만 높다랗게 바라보이는 준봉들은 모두 1천m가 넘는 고봉들이었다. 그처럼 험준한 산 아래에 놀랍게도 살둔.월둔.달둔으로 부르는 세 둔덕이 자리잡았다. 사가리는 그들 삼둔 기슭에, 병아리 우리 같은 집을 짓고 매미처럼 붙어 살고 있는 뜸마을인 아침가리.연가리.적가리.명지거리를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그 사가리 뜸마을에 흐르는 방계천 지류, 강원도의 물안개는 모두 그곳에서 길러지고 스러진다.

일행은 주섬주섬 차에서 내려섰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사방에 둘러쳐진 준봉들에 기가 질린 탓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한두령이 살고 있는 곳까지는 길이 멀었다. 벌써 기가 막힐 것 같은데, 또 다시 산속으로만 가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는 차중에서 줄곧 휘파람을 불어 젖히던 방극섭도 사방의 산등성이를 휘둘러보고 난 뒤부턴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일행들은 모두 방극섭이 몰고 온 트럭에 느릿느릿 옮겨 타기 시작했다. 한두령이 자리잡았다는 월둔골까지는 시늉뿐인 비포장도로였기 때문이었다. 삼둔 사가리 중에서 그나마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살둔과 명지거리뿐이었다. 방극섭은 돌니가 박힌 비포장길을 땀을 흘려가며 운전하고 있었다. 그는 비로소 한철규가 구태여 강원도 내륙 오지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는 이곳에 터전을 잡았는지 염치를 알 수 없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간혹 승희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치였으나 그녀는 그때마다 외면해 버리곤 하였다. 그러나 차가 몹시 요동을 칠 때면, 당장 멈추게 하고 묵호댁을 데리고 차에서 내려 걸었다. 행여나 묵호댁 배안에 있는 핏덩이가 탯줄을 놓아버리는 불상사를 겪을까 걱정된 탓이었다. 여자의 깊은 속내를 모르고 있는 희숙은, 승희가 내준 조수석에 버티고 앉아 차를 내려서 걷곤 하는 두 여자를 향해 곤댓짓하며 철부지처럼 즐거워했다. 나란히 앉은 언니에게 젖먹이를 건네준 그녀는 아침에 미장원에서 매만진 머리가 흐트러질까 스카프로 싸매고 있었다. 그러나 일행 모두가 차를 내려 걸어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 칡소폭포를 만나면 차로 왔던 비포장길은 명지거리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곳에서 달구지길 2㎞ 정도를 걸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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