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열정과 감성, 원숙미로 녹여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 정명화(오른쪽)·정경화(왼쪽)·정명훈 3남매가 재회한 ‘정 트리오’ 연주회는 올 가을을 여는 훌륭한 무대였다.

기립박수, 환호, 열광….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정 트리오, 10년만의 해후'는 그렇게 끝났다. 피날레 곡이 끝나자마자 합창석까지 가득 메운 청중들은 약속이나 한듯 일제히 기립 박수를 퍼부었다. 단지 공연이 훌륭해서 보내는 박수만은 아니었다. 각자가 세계적인 음악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가족'인 이들을 청중이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박수 갈채였다.

지난달 30일 통영에서 시작된 전국 5개 도시 순회공연의 마지막 무대가 못내 아쉬웠기 때문일까. 세 남매는 천천히 무대로 걸어 들어왔다.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제5번 D장조 작품 제70-1번 '유령'의 느린 템포를 감안한다면 벌써 이때부터 연주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원숙미와 에너지가 넘치는 이 곡에서 정경화는 특유의 카리스마적인 연주로 다른 악기에서 감성을 끌어내어 공유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해냈다.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3중주 제2번 e단조 작품 67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4년에 작곡된 작품으로, 전쟁의 참화와 허무가 곳곳에 스며있는 작품이다. 때로는 한탄으로, 때로는 애절함으로 다가오는 이 작품의 선율들이 정 트리오의 표현력 넘치는 연주를 통해 살아났다.

세 남매는 한국전쟁 때 피난길을 떠나면서 피아노만큼은 꼭 챙겨가겠다던 어머니 이원숙 여사에 대한 고마움을 되새기며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되돌아간 듯했다. '막내'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되돌아간 정명훈씨도 피아노 앞에서 마치 지휘하듯 두 누나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으면서 음악을 이끌어갔다.

세 번째 곡이었던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 B장조 작품 제8번은 연주회의 백미였다. 곡의 구조를 치밀하게 해부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음악적 테마를 부각시키면서도 전체 곡의 구조 안에서 상승과 절정, 또한 그것의 해소가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연주했다.

정명화(첼로).정경화(바이올린).정명훈(피아노)으로 구성된 정트리오의 이번 공연은 지난해 모친 이원숙 여사의 85회 생신 축하를 위해 계획되었다가 연주 일정상 한 해 미뤄졌다.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정 트리오가 무대에서 받은 꽃다발은 막내 명훈씨가 객석으로 뛰어 내려가 모친의 품에 안겨드렸다. 이 여사는 연주 내내 객석에 앉아 있었지만 사실상 이번 연주회의 주인공이었다.

전정임<음악평론가.충남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