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결정적 확산 시점’ 대비 못한 신종 플루 방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어제까지 잠잠했는데 오늘은 수만 명의 네티즌이 한 카페에 몰려들어 사회 이슈를 만들어낸다. 조류 인플루엔자(AI)가 갑자기 번져 농가를 울린다. 네트워크 연구자들은 여론 폭발이나 역병 대유행이 막 시작되는 순간을 ‘임계점’ 또는 ‘결정적 다수 단계’라고 표현한다.

올해로 탄생 40년이 된 인터넷은 처음에는 군사용으로 개발됐다. 한동안 과학자·정부 요원의 전유물이었다. 그래픽에서 보듯, 20년이 넘도록 확산 속도가 매우 느렸다. 그러다가 1994년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연간 사용자가 처음으로 2000만 명을 돌파한 뒤 매년 두세 배로 늘어났다. 전문가가 주인이던 인터넷 세상에 ‘결정적 다수’가 합세해 정보혁명 시대를 연 것이다. 이런 움직임을 낚아챈 사업가와 그러지 못한 사업가의 운명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듯하다.

지난해 촛불사태 때도 결정적인 확산 시점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을 도심으로 끌어모으는 데 인터넷 매체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포털 ‘다음’의 쇠고기 관련 뉴스에 붙은 댓글 수를 통해 추적해봤다.

4월 15일, 강기갑 의원이 쇠고기 협상 과정에 관한 의혹을 제기한 뉴스의 댓글은 400건대였다. 이후 보름간 댓글 수는 4000건까지 완만하게 상승했다. 그런데 4월 30일, 상황이 달라진다. 하루 만에 8000건대로 뛰어오른 것이다. 며칠 뒤 4만 건까지 폭등한다. 사이버 열기가 대규모 도심 시위로 이어지기 직전까지 경찰 등 관계 당국은 느슨하게 대처했다. 경찰이 ‘결정적 다수’가 참여하는 시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가 곧바로 적절한 대책을 썼다면 뜨겁고 시끄러운 여름은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신종 플루로 눈을 돌려 보자. 하루 평균 환자 발생 수는 석 달 전부터 이달 첫째 주(900명)까지 완만하게 늘어났다. 그런데 둘째 주 들어 1500명으로 점프했다. 그 후에는 매주 두 배로 늘어났다. 학생 집단 발병 학교 수 역시 첫째 주 137곳에서, 둘째 주 346곳으로 증가했다. 결정적 다수가 가세한 시점은 ‘10월 둘째 주’였던 것이다.

정부 대책은 한 박자 늦었다. 어린 자녀를 안은 엄마가 거점병원 앞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고 타미플루 공급량이 부족한데도 정부 대책은 셋째·넷째 주 돼서야 나왔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사이에 혼선도 빚어졌다.

어정쩡한 휴교 지침은 학교와 학생·학부모를 우왕좌왕하게 했다. 의사협회에서는 전면 휴교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전면 휴교, 지역별 휴교, 자율 휴교를 놓고 고민하다가 사태는 대유행 길목까지 치달았다. 수습 시점을 한번 놓치니까 설사 휴교를 해도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국내 신종 플루 사망자는 아직 많지 않은 편이다. 관계 당국은 지금부터라도 ‘결정적인’ 사망자 확산 시점을 눈여겨봐야한다. 그 순간이라고 판단하면 즉시 전염병 최고 위기 단계인 ‘심각 단계’로 올리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네트워크 사회에 살고 있다. ‘갑작스러운 그날’을 잡아채느냐에 따라 조직과 개인의 성패가 결판날 수 있다. 갈대는 바람이 오기 전에 눕는다고 했던가. 지도자는 절정의 순간보다 절정의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규연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