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서민축제 ‘물레아트페스티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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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골목길 가로등 밑에서 춤을 추는 예술가. 카메라를 매개로 주민들과 대화하는 사진작가. 매캐한 철공소 건물 사이사이로 보이는 설치 미술. 물레아트페스티벌은 이런 소박한 모습을 그대로 담은 예술축제다. 축제의 무대는 문래동이며 주인공 역시 이곳 사람들이다.

“자동차·우주선을 그렸어요. 또 동네에서 많이 봤던 아파트, 그리고 라디오랑 사다리도요. 모두 철로 만들었어요.” 문래동에 사는 이원혁(7)군의 말이다. 문래동 철재공장을 연상케 하는 ‘철’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 물레아트페스티벌에 참여한 꼬마예술가다. 이수안(6)군은 철을 만들어내는 ‘도깨비 나라’를 그림으로 그렸다. “철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유치원도 있고, 학교도 있어요.” 철공소 먼지가 날리기도 하고, 근처 개발된 아파트 단지에는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동네지만 아이들의 기발한 상상력이 ‘문래동’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8~9년 전. 아니, 아마 그 전부터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인정받지 못한 젊은 예술인들이 임대료가 싼 이곳으로 하나 둘 모여 스튜디오를 만들기 시작했죠.” 물레아트페스티벌의 손성희 프로그램 디렉터는 철공소가 문을 닫는 오후 6시가 지나면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점차 늘어난 이들이 문래동 길에서 무용과 퍼포먼스를 벌이며 2007년 물레아트페스티벌이 시작됐다.

올해로 3회를 맞은 이번 물레아트페스티벌의 주제는 ‘철 사람과 함께 서다’다. 특히 올해는 문래동과 문래동 사람들을 주제로 주민과 소통하는 예술축제라는 점에서 여느 해보다 의미가 깊다.

주민들의 반응이 처음부터 호의적이진 않았다. “여러 번 찾아가 이번 작업의 의미와 페스티벌의 취지를 설명했어요. 처음엔 조금 불쾌해하는 것 같더니 나중엔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기계를 막 닦았으니 촬영을 다시 하면 어떠냐고 권하기도 하시더군요.” ‘문래동 사람들’ 사진전에 참여한 사진작가 윤제욱(36)씨의 말이다. 사진작가 이승우(23)씨는 “이제는 작품활동에서 알게 된 주민들이 사진전을 보러 직접 찾아와준다”며 “사진을 선물하기도 하고, 함께 밥을 먹을 정도로 친숙한 사이가 됐다”고 덧붙였다.

작품 속엔 주민의 진솔한 삶이 묻어난다. 철공소 작업, 고된 작업 흔적이 드러나는 손, 하루 일을 끝내고 가게 앞에서 마시는 한잔의 술등이 가감없이 포착됐다. “덕분에 활기차서 좋다”고 말하는 주민이 적지 않을 만큼 문래동의 예술활동은 이미 친근한 풍속도가 됐다.

“얼마나 고생했냐며 개막식 때 한 주민이 박수를 크게 치며 분위기를 유도해주시더군요. 물론 아직 못마땅해하거나 관심 없는 분들도 있겠지만, 찬반이 공존하는 것 자체가 리얼한 삶과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손 디렉터의 말이다.

축제를 알리는 변변한 현수막도 안 걸고, 전시장 찾기도 만만치 않다. “소박한 서민축제로 치르다보니 불친절하다는 평도 종종 듣는다”는 사진작가 박김형준(34)씨는 “물레아트페스티벌은 알면 알수록 훈훈하고 소박한 문래동 사람들 같다”고 말한다. 단지 포장을 안했을 뿐 알맹이는 더없이 차지단다.

[사진설명]①물레아트페스티벌은 주민과 젊은 예술인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축제다. 사진전에 참여한 윤제욱·이승우·박김형준 사진작가(왼쪽부터). ②‘꼬마 예술가’ 이원혁·이휘찬·이수안 어린이(왼쪽부터).

<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

< 사진=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


◈물레아트페스티벌 2009 = ‘철 사람과 함께 서다’를 슬로건으로 문래동 철제 거리에서 춤, 퍼포먼스, 설치, 회화, 사진,문학 등을 펼쳐 보이는 예술 축제. 공연은 오후 7시, 전시는 오후 2~9시로, 31일까지 계속된다. 문의=02-3667-9171 www.mia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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