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국가의 식은땀, 충청이 닦아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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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가을이 깊어가면서 대한민국의 세종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원안 추진’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원래 박 전 대표가 대통령에 합세해도 세종시법 개정은 미디어법보다 10배는 어려운 것이었다. 서민의 땅과 생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에 박 전 대표가 아예 선을 그었으니 정권으로선 더욱 난감하게 됐다. 박 전 대표의 선언으로 민주·선진당과 시민세력의 세종시 연대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세종시 현장에선 이미 지역인사들이 원안 사수(死守)를 외치며 단식에 들어갔다.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캄캄한 계곡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이 세종시로 인해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거의 모든 나라가 안보와 행정효율을 위해 국가의 두뇌기능을 한곳에 모아두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과 부통령이 백악관에 같이 있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맞댄다. 대통령은 서울에 있고 총리와 장관들이 세종시로 간다면, 미국으로 치면 대통령은 워싱턴에 있는데 부통령과 장관들은 뉴욕에 머무는 꼴이다. 아랍과 대치하는 이스라엘로 치면 총리는 예루살렘에 있는데 주요 장관들은 지중해 해변도시에 있는 것과 같다. 합리적인 나라라면 상상할 수 없는 불합리다. 문제는 이런 불합리를 막으면서 명품자족도시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원안추진론자들은 “부처가 안 오면 기업이든 누구든 아무도 안 올 것”이라고 말한다. 세종대왕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국가를 위해 먼저 충청이 양보하고 그 양보하는 충청을 범국가적으로 돕는 건 어떨까. 충청으로선 위험하고 억울한 거래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우리가 언제 해달라고 했나. 약속은 국가가 했는데 왜 충청에 바꾸라고 요구하는가.” 충청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생각해보면 충청도가 그런 결심을 하는 게 가능하기도 하다. 지리적으로 경상·전라·충청은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삼각기둥이다. 세 지역은 역사적으로도 국가를 이끌어왔다.

경상도 사람들이 역사를 이끈 대표적인 사건은 1960년의 ‘2·28 대구학생의거’와 79년 10월의 부마(釜馬)민주항쟁이다. 두 사건은 모두 독재를 무너뜨린 격류의 시발점이었다. 2·28은 며칠 후 3·15 마산 시위 그리고 전국적인 4·19 학생혁명으로 이어졌다. 79년 10월의 부마항쟁은 병들어가는 유신독재를 무너뜨렸다. 전라도 사람들이 역사를 주도한 대표적인 사건은 1929년 11월의 광주항일학생운동과 80년 5월의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두 사건은 모두 권력의 압제에 맞서 자유와 민주를 외친 것이다. 29년과 80년의 광주는 시대의 심장이었다.

국가를 위한 충절로 보자면 충청도 경상과 전라 못지않다. 충청도 금산 땅에는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700 의병의 무덤이 있다. 칠백의총(七百義塚)이다. 이들을 비롯해 많은 의로운 백성이 나라가 어려울 때 총칼과 횃불을 들고 일어섰다. 독립선언서 33인 중 17인이 충청 출신이다. 이런 충절의 역사가 있었지만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서는 경상·전라 같은 커다란 기회를 잡지 못했다. 시운(時運)이 맞질 않았던 것이다. 그런 충청에 세종시는 이를 보상할 수 있는 위대한 기회가 될지 모른다. 전쟁이나 독재가 없는 21세기에 의인(義人)은 의병이나 시위대가 아닐 것이다. 나라를 지역보다 앞에 놓을 때, 그들이 의인이 아닐까. 충청도인이 먼저 손을 내밀어 못난 국가의 식은땀을 닦아 주면 국가는 충청에 빚을 지는 것이다. 그런 의로운 충청을 보면 전 국민은 명품도시 세종을 위해 머리를 짜내고 지혜를 모을 것이다. 찾으면 길은 있을 것이다. ‘국가와 세종시 같이 살리기’ 운동은 부마항쟁이나 광주항쟁 못지않게 역사에 기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시대는 충청도 의인을 갈구하고 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