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통합하니 역시 직장보험만 '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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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7월 직장과 지역의 건강보험 재정이 통합됐을 때부터 걱정했던 대로 직장건보가 지역건보의 적자를 떠맡게 됐다. 직장건보 재정이 올해 처음 흑자로 돌아서 발생한 흑자분 8500억원이 지역건보 적자 9700억원을 메우는 데 들어가기 때문이다. 직장건보 가입자로서는 순전히 지역가입자 때문에 매년 보험료 인상을 감수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됐다.

이렇게 일이 엉망이 된 데 대해 정부는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지난해 재정통합이 추진될 때 직장인들은 '직장과 지역 건보의 보험료 부과체계가 달라 돈주머니를 합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월급의 4.21%를 내는 직장인과는 달리 지역가입자는 소득.부동산.자동차 등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부과되기 때문에 나온 지적이다. 그래서 정부는 2003년 말까지 단일 보험료 체계를 마련해 직장인의 부담을 늘리지 않겠다며 무마했다. 하지만 기한이 8개월이 지나도록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아쉬울 때는 온갖 감언이설을 하더니 이제와선 나 몰라라 해서야 되겠는가.

지금 자영자 중 소득자료가 있는 사람은 34% 정도에 불과하며, 그나마 소득을 불성실하게 신고하는 사람도 많다.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가 소득을 축소 신고한다는 사실은 온 천하가 다 안다. 반면 직장인들은 단 한푼을 벌어도 고스란히 세무당국에 포착되고 있다. 이런 한심한 구조 때문에 직장가입자들은 2001년 이후 지금까지 2년 반 사이 보험료가 81%나 오른 반면 지역은 27%만 올랐다. 실제로는 자기보다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내야 할 보험료까지 직장인들이 몽땅 부담해야 하니 이처럼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정부는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위해 단일부과체계를 만들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에 앞서 소득파악률을 높이는 데도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원래대로 직장과 지역 보험을 분리하라. 직장인의 주머니를 마음대로 털어 지역보험의 곳간을 채우는 불량제도가 그대로 굴러가게 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