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 오래가면 손해" 與 '문건 진화' 물밑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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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0일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이 주재한 국민회의 당8역회의 뒤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의 회의결과 브리핑은 정형근(鄭亨根)의원에 대한 성토와 '한나라당은 국회로 복귀하라' 는 것이었다.

발표 내용은 지난 1주일 동안 달라진 게 없다. 익명을 부탁한 한 참석자는 "당직자 회의가 야당의 공세를 맞받아치는 쪽에 여전히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 전했다.

이 참석자뿐 아니라 당 지도부는 언론문건 정국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직자들은 우선 국회 정상화를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장외에 머물고 있는 한나라당을 어떻게든 국회로 끌어들이면 정국의 관심이 선거법 협상.신당 창당 쪽으로 바뀔 것이라는 판단인 것이다.

이에 따라 한화갑(韓和甲)-한나라당 하순봉(河舜鳳)사무총장 라인, 박상천(朴相千)-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원내총무의 대화 창구가 물밑에서 분주하게 가동되고 있다.

韓총장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지난 6일 만남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두 사람은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당사자들은 대화 내용을 거론하지 않고 있지만 주위에선 "여야 총재회담 등 교착정국의 해소 방안을 놓고 자연스러운 의견교환이 이뤄졌을 것" 이라고 관측했다.

이처럼 국민회의가 대화정국 복원에 발벗고 나선 데는 국면전환이라는 필요성도 있지만 문건 정국의 대처방식이 '단선적인 대야(對野)공세' 에 치중했다는 자성론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직을 맡고 있는 한 중진의원은 "정국의 가파른 대치상황이 오래가면 그 부담을 여야가 나눠 갖는 게 아니고, 여당의 정치력 부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 많아지게 된다" 고 걱정했다.

그러나 당직자들의 고민은 한나라당을 국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결정적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한 관계자는 "문건 사건에 대한 조건없는 국정조사, 선거법 날치기 처리 방지 약속 등 한나라당의 요구사항은 국민회의가 추진 중인 여야 총재회담의 준비과정에서 얼마든지 절충이 가능하다" 고 말했다.

특히 이날 이회창 총재가 여당의 선거법 국회 단독제출을 "날치기의 서곡" 이라고 주장한 대목을 놓고 '국회 복귀를 위한 역설적인 신호' 로 여권 일각에선 분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강경론도 남아있다. 박광태(朴光泰)의원은 당 회의석상에서 "한나라당이 계속 장외집회를 고집한다면 단독국회도 불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고 공개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또다른 당직자는 "이회창 총재가 장외집회에 맛을 들였다면 우리의 대화카드는 소용없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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