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펼친 전통 소설의 맛-민경현·전성태 나란히 첫 창작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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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삿 잠에 똥 지린다고, 무당도 설돼서 일점혈육 지 딸년도 하나 옳게 건사 못한 년이 무신 남의 목심줄은 늘콰준다고… 문둥이 똥꼬에서 콩나물 빼먹는 짓 마않이 하였소. "

최근 출간된 창작집 '청동거울을 보여주마' (창작과비평사)에 실린 표제작의 한 대목이다. 이 창작집의 단편들은 무속(巫俗).불교예술을 다룬 소재며 토속어를 살려낸 구어체가 시쳇말로 '요즘 소설' 이 아니라 독자들이 중고교시절 읽었을 김동인.김동리 등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흔히 '새로운 감각' 이 '젊은 작가' 의 트레이드 마크로 여겨지는 시대, 전통적 소설미학에 닿아있는 복고적 소재를 들고 나선 젊은 작가들이 문학계 일각의 주목을 끌고 있다.

올가을 나란히 첫 창작집을 펴낸 '청동거울을 보여주마' 의 작가 민경현(33)씨와 '매향(埋香)' (실천문학사)의 작가 전성태(30)씨가 그들. 전남 고흥 출신으로 10대 후반까지 고향 언저리에서 보낸 체험을 바탕으로 토속적인 농촌풍경을 그려내는 전씨는 선배 작가 이문구씨 이래의 농촌소설 계보를 잇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한자리에서 만난 두 작가는 이같은 긍정적 평가보다는 '낡은 얘기를 한다' 는 비판이 한결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오래된 곡조라도 연주자에 따라 얼마든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것" 이라고 조심스레 말문을 연 민경현씨는 "1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소설이 '인간본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 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다" 고 주장을 이어갔다.

전성태씨는 "역사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운 우리 세대라면 좀 다른 리얼리즘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말로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 비중을 두면서 미묘한 인간내면에 대한 포착을 보류했던 80년대와 그 역으로 파편화된 내향적 목소리만이 가득했던 90년대를 겪고 난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인간 탐구의 조건이 열려있다는 견해를 폈다.

사실 소재적 특성만으로 이들을 한데 묶는 것은 억울한 일. 극적 서사 대신 삽화적 결말이 잦은 전성태씨의 작품과 막판의 반전을 포함, 꽉찬 구성을 즐겨 사용하는 민경현씨의 작품은 기법상에서 차별성이 크다.

고전적 소설창작의 태도에 한결 다가서 있는 것은 민경현씨쪽. 생사의 무게가 실린 예술혼을 다룬 그의 강렬한 소재들에는 책.영화 등 간접 취재의 비중이 큰 90년대 소설들과 달리 빼곡한 발품이 들어있다.

이들은 각각 "인간을 다루면서도 당대와 호흡하는 일" (민경현) "농촌을 넘어서 현재형 삶의 현장을 그려내는 일" (전성태)을 앞으로의 과제로 꼽았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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