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적 실력 행사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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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19일 시민운동의 정치 참여를 선언한 ‘희망과 대안’ 창립 행사가 무산됐다. 행사가 시작된 직후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등 보수단체 회원 50여 명이 단상으로 몰려 나가 “애국가를 먼저 부르고 행사를 하라”며 소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희망과 대안’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 시민운동가들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좋은 후보’ 발굴 기준을 내놓는 등 정치에 참여하겠다며 만든 단체다.

애국가를 부르라는 요구는 명분에 불과해 보인다. 이날 소동을 벌인 보수단체 회원들은 좌파 척결을 행동 목표로 삼아왔다. 그런 점에서 ‘희망과 대안’이란 단체의 성향에 불만을 갖고 방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6월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 발표도 고함을 지르며 방해했다. 9월 10일에는 흑석동 국립 현충원 앞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묘를 설치해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그들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표현 방법은 크게 잘못됐다고 본다. 그들이 그렇게 수호하고자 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람마다 정치적 견해와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일점을 찾아내는 것이 민주주의다. 설령 그들의 의견이 백 번 옳다고 해도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 방법으로 상대방이 설득되겠는가. 아무리 좋은 의견을 내놔도 감정의 골이 깊이 파일 수밖에 없다. 또 반대세력이 실력 행사를 할 때는 무슨 논리로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방식으로는 해방 직후 민주주의의 기본도 모르고, 좌우 대립이 격화됐던 그 시절로 퇴보하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도 그들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과격한 언행을 주목할 것이고, 정치적 설득력을 얻기보다 고립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반대세력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정치적 공감대를 확산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정치적 표현의 수단이 제한된 어르신들의 모임이라 해도 세월을 살아온 지혜를 모아 좀 더 합리적이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