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30년 문학세계'한 매듭 중·단편전집 6권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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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남도색 짙은 어휘로 토속적 한(恨)과 이를 승화시킨 설화적 세계를 그려온 소설가 한승원(60)씨가 지난 30여년의 중.단편을 한데 모은 전집을 펴냈다.

'불의 딸' (83년) '아제아제 바라아제' (85년) '동학제' (94년)등 굵직한 장편이 한승원문학의 기둥이라면 이들 중.단편은 작고 튼실한 가지인 동시에 뿌리.

총6권(문이당.각 9천원)인 이번 전집은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목선' 을 표제작으로 내건 첫권이 부정적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강했던 초기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비롯, 이후 한(恨)의 세계를 신비적 사랑과 생명으로 풀어내온 한승원문학의 전개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간의 문학적 여정에 한 매듭을 지은 작가의 소회는 어떤 것일까.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는 남도 바닷가, 고향 전남 장흥의 작업실 에 틀어박혀 있던 작가는 "돈도 안돼는 이런 책을 2년 남짓 준비해서 내놓은 출판사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러 올라온" 김에 번잡한 신문사를 찾았다.

평소 즐겨 입던 여유로운 한복과 달리 넥타이까지 갖춰 맨 차림에서 청년같은 패기를 읽었다면 실례일까. 그는 이른바 서울의 '문단' 이 궁금하지 않더냐는 질문에 "내 나이쯤 되면 내려가서 글을 써야하는 것 아니냐" 고 반문했다.

"내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한국 작가의 자존심 문제" 라고 말문을 연 작가는 "우리 나라 작가들의 작가적 생명력이 너무 짧다" 면서 80대에 '파우스트' 를 완성한 괴테, 60대 중반에 '히랍인 조르바' 를 써낸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비교한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 김유정의 '동백꽃' 등의 대표작이 서른 전후에 쓰여진 것은 작가들이 단명 혹은 요절했던 사정 때문이라고 넘기더라도, 평균수명이 70대인 요즘 같은 시대에도 3, 40대에 쓴 작품이 대표작이 되버리고 5, 60대에 이미 현역 아닌 원로가 되버리는 풍토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젊은 날만큼 거칠고 힘찬 매력은 없을 테지만, 나이들어서 나온 작품에는 삶의 총체성과 인생의 우주가 담겨있다" 면서 여러 예술가를 거론한 그는 전집 머릿말에 실린, "살아있는 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을 쓰는 한 살아있을 것" 이란 자신의 다짐을 상기시킨다.

"작가가 감내해야하는 절대고독과의 싸움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 는 그의 단단한 결의에는 2남1녀 중 장남 동림(31)씨와 장녀 강(29)씨 역시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사실이 한층 힘을 북돋운 모양이다.

실제 이번 전집의 여섯째권 '검은 댕기 두루미' 는 이제까지 작가가 곧잘 써온 연작형태의 단편 '새터말 사람들 1.2.3' 등 90년대 작품들만을 모은 '새' 창작집이다.

평론가 김주연씨는 "인간 욕망으로서의 성행위와 그로부터 시작되는 신생(新生), 그 끝으로서의 죽음, 그러나 영원한 끝을 거부하는 환생으로서의 윤회와 같은 원형의 둥근 세계" 라고 한씨의 중.단편을평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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