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추석경기 '대목 분위기 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 올 추석 경기는 그런대로 여유가 있을 것 같다. 경기 호전으로 기업체들의 씀씀이가 후해지면서 지난해와는 달리 추석 선물 수요가 급증, 백화점.할인점 등이 흥청대고 있다.

상대적으로 서민들이 찾는 재래시장에도 찾는 사람이 늘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회복되는 등 연초의 극심했던 양극화 현상이 조금씩 해소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아랫목 온기가 윗목으로 퍼지는 것 아니냐' 는 성급한 판단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물론 아직도 부도나 실직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전반적인 경기가 확연히 좋아진 것은 사실" 이라고 말했다.

◇ 늘어나는 선물세트 주문 = LG생활건강의 경우 당초 올 추석 생활용품 선물세트의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30% 늘려 2백60억원 어치를 준비했으나, 14일 현재 주문량만 3백억원이 넘었다.

제일제당도 올 추석 선물세트 매출 목표를 36% 늘린 6백20억원으로 잡았다. 이들 상품은 대부분 중저가라 중산층 이하의 소비심리가 점차 되살아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 발디딜 틈 없는 백화점.할인점 = 현대백화점은 요즘 비상이 걸렸다. 추석 선물세트 주문이 넘쳐 오는 18일과 19일 이틀간 이병규 (李丙圭) 사장 등 임원 15명까지 동원돼 배달에 나서기로 할 정도다.

압구정동 본점의 경우 14일 하룻동안 평소 두 배에 가까운 2만명의 고객이 몰렸다. 롯데.신세계백화점에도 지난주부터 선물을 미리 준비하려는 고객들로 붐벼 이 일대가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고 있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이른바 '빅3 백화점' 은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의 매출 (본점 기준) 이 3백7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나 늘었다.

롯데 관계자는 "추석 상여금이 나오는 기업들이 늘어 고객들도 지난해보다 비싼 선물을 찾는 경향이 뚜렷하다" 며 "30만~50만원의 고가 상품권도 이달 들어 열흘 동안 2억원 어치가 나갔다" 고 말했다.

할인점인 농협 하나로클럽 창동점은 지난 11일 10억3천8백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는 추석 5일 전에야 하루 10억원대 매출을 달성했는데, 올해는 추석 13일 전에 10억원을 넘어섰다.

농협 손정일 과장은 "지난 주말에는 한밤중까지 고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며 "추석 대목 매출이 지난해보다 30% 가량 늘어날 것 같다" 고 말했다.

◇ 시장 분위기도 살아난다 = 추석을 열흘 앞둔 14일 재래시장인 남대문.동대문.노량진수산시장 등에도 주부들의 발길이 지난해보다 20~30% 정도는 늘어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남대문시장의 경우 부산.대구.광주.목포.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상인들이 타고 올라오는 전세버스가 지난해에는 하루 50대 안팎에 그쳤으나 올해는 60대 수준으로 늘었다.

대도상가의 한 상인은 "아동복.한복을 중심으로 매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며 "남성복 등은 아직 침체를 벗지 못하고 있지만 늦더위가 수그러지면 곧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 말했다.

동대문시장 내 두산타워와 밀리오레 상가도 비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밀리오레 관계자는 "시장에 들르는 고객 숫자가 지난해와 비교할 때 20% 정도는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고 말했다.

추석 경기 지표로 삼는 제수용품.농산물 시장도 고객이 점차 늘어 상인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의 이연우 과장은 "건어물 등을 미리 장보러 나오는 주부 고객이 지난해보다 20~30% 정도 증가했다" 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의 이근태 (李根邰) 책임연구원은 "올 2분기의 도시근로자 가계수지를 보면 소비성향이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 이전보다 더 높게 나타날 정도" 라며 "최근 수출과 투자부문까지 덩달아 활기를 띠어 대우그룹 사태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바닥경제가 빠르게 회복세를 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고 말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찾는 사람은 늘었지만 바로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서민층의 소비심리가 추석 이후까지 이어질지는 두고봐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김시래.고현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