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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칼럼] 南北 역사 교류 급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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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과거 사실이 진실로 어떠했던가. ' 독일 역사학자 랑케가 던진 이 의문은 오늘도 역사학도들의 살아 있는 좌우명이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밝혀낸다는 역사이론이다.

그러나 진실로 과거 사실을 제대로 밝혀낼 수 있나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고급옷 로비사건만 해도 비교적 단순사건이지만 사직동팀에 이어 검찰이 수사를 하고 국회가 청문회를 열었지만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불과 8개월 전 사건이다.

그런데 8백년 전, 아니 수천년 전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밝혀낼 수 있는가.

그래서 역사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반론이 나오고 역사학자의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역사는 언제나 새롭게 쓰여진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꿰맞추기 위해 없던 사실을 변조, 강변하면 '역사의 남용' 죄에 걸리고 합리적 자료검색과 검증을 거쳐 합의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면 '역사의 효용' 에 속한다는 게 역사학자 피터 하일의 논리다.

최근 단군 존재를 둘러싸고 문화계의 논쟁이 뜨겁다.

시인 김지하 (金芝河) 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문화운동가들이 '마고 (麻姑) 를 찾아서' 라는 상고사 (上古史) 탐구 운동을 벌이고 있다.

1만4천년 전 중앙아시아의 낙원 '마고' 에서 단군조선의 신시 (神市)에 이르는 인간 내면의 순환운동 율려 (律呂) 의 정신세계를 회복하고 상고사를 새롭게 조명하자는 운동이다.

여기에 역사학자들이 실증을 무시한 상고사 세우기이고, 민족 구심점에 집착해 학문적 근거 없이 실존연대와 규모를 과장해 종교와 역사를 혼동한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이에 김지하는 일제 식민사관의 아류들이 실증의 잣대로 민족의 뿌리를 재지 말라고 분노한다.

나는 이 논쟁의 어느 한쪽을 편들 만큼 전문지식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이 논쟁을 통해 우리 상고사의 중요부문을 새롭게 조명하고 연구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는다.

실증에 묶여 남의 역사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도 잘못이고 상상력에만 집착해 고증을 도외시해도 설득력을 잃는다고 본다.

평양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자동차로 20분만 가면 대성산성에 오른다.

3백m가 채 안되는 야산이지만 정상에 서면 만주벌을 연상하는 평양평야가 한눈에 펼쳐진다.

산성 밑에 장수왕이 427년 도읍을 옮긴 안학궁터가 내려다보이고 지금은 댐공사로 실개천이 된 '고구려 다리' 를 건너 1백리쯤 정남향 거리에 고구려 시조 동명왕릉이 자리잡는다.

나는 몇차례 방북 중 이 산성에 오를 때마다 안학궁을 내 머릿속에 재현해보기도 하고 시조 왕릉을 찾아가는 장수왕의 긴 행렬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이런 것이 역사적 상상력 아닌가.

황해도 재령땅에 거대한 고분이 있다.

안악3호 고분.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논란이 많다.

중국에서 망명한 동수 (冬壽) 설에서 시작해 미천왕.고국원왕설로 굳어지고 있다.

성상번 (聖上幡) 이라는 임금 깃발을 앞세우고 비단 모자를 쓴 고구려왕이 5백여 신하를 뒤 세운 행렬이 아름다운 채색화로 남아 있다.

측실의 왕실 창고라 할 곳간에는 개고기 비슷한 육류가 걸려 있고 마당 우물터엔 도르래를 단 듯한 물 긷는 도구가 설치돼 있다.

그리고 곳간 지붕 위엔 까마귀 한마리가 마당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우뚱 틀고 있다.

장수왕보다 1백년 앞서 조성된 무덤 속에서 나는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을 상상 아닌 실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신화와 역사의 갭을 메우는 장치가 상상력이다.

특히 상고사 부문은 역사적 상상력과 고고학적 작업을 아울러 신화를 역사로 환치하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단군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고구려 초기 역사에 대한 복원을 지금부터 시작하는 노력을 역사학.고고학계가 보여야 한다.

상고사에 관한 한 북한 연구가 지역적으로 우리보다 유리하다.

고고학적 성과 또한 높다.

1963년 북의 김일성 (金日成) 수상과 중국 저우언라이 (周恩來) 총리간 합의로 조.중 (朝.中) 발해지역 공동발굴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발굴은 북한의 발해사 연구를 월등히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단군의 실재 여부를 둘러싼 탁상공론을 벌일 때가 아니다.

남북한 역사.고고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구성과를 나누고 토론하고 공동발굴하는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한 연구자나 단체가 하기엔 어렵다.

남북 당국이 나서 역사복원 작업을 해야 한다.

그다음 중국과 교섭을 벌여 남북한.중국 공동의 상고사 발굴작업을 해야 한다.

비료회담보다 역사회담이 남북 화해.협력을 촉진하는 더 효과적인 전기가 될 수 있다.

권영빈 논설위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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