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역주의] 4. 지역 경제 격차 줄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으로 지역문제를 말하지만 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서울과 지방간의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는 일이다. 이는 각종 통계자료에서 확인된다.

여러가지 자료를 비교 분석해 보면 수도권과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타지역이 소외됐고 그 절대적 격차가 벌어져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소외된 지역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서울로 몰리면서 그들이 떠난 지방의 여건이 호전되고 지방간의 차이도 줄었다. 지역감정의 주원인이 되고 있는 경제적 격차를 따지자면 서울과 지방간의 큰 차이가 문제지 평준화되고 있는 지방간의 차이는 아닌 셈이다. 결국 문제는 인구와 부 (富)가 집중된 서울이다.

특히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대거 몰려온 호남인들의 경우 저소득층으로 편입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호남출신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기도 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돼 상대적으로 교육.소득 면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또다른 편견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역감정은 언제 시작됐을까. 지역감정이 시작된 시점에 대해 절반 가까운 국민들이 '박정희 시대' 라고 응답했다. 지역간 경제적 격차가 시작된 시점에 대해서도 절반 가량은 박정희 시대를 꼽았다.

여기에도 지역별 차이는 있다. 박정희 시대를 꼽는 비율이 호남에서 특히 높다. 두번째로 많은 응답인 '조선시대 이전' 은 서울과 경북에서 높게 나왔다.

'박정희 시대에 시작됐다' 는 다수의 생각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산업화가 본격 시작된 박정희 시대 이후 지역간 경제격차의 변동양상을 살펴보면 수도권과 영남중심의 성장사를 확인할 수 있다. 지역감정이 심화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면 수긍이 간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특히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은 다른 데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지역별 공업화 정도 = 먼저 지역별 산업화.공업화 정도를 가늠하는 '지역별 광공업분야 부가가치 생산' 비율을 보면 수도권과 영남권이 일관되게 타지역을 앞서간다.

박정희 시대가 열린 63년의 경우 서울이 전국 부가가치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해 독보적이다. 다음이 경남.경북으로, 영남권 전체로 보면 32%.전국 부가가치의 3분의1이다. 호남과 충청지역은 각각 10% 전후.

부가가치 생산비중은 충청 : 호남 : 영남 간에 1:1.2:3.5 비율이다. 박정희 시대 이전에 이미 수도권.영남권과 다른 지역간의 차이가 현격했음을 말해준다. 이같은 격차는 경기도를 제외하고는 최근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경기도의 급성장은 서울의 팽창에 따른 것. 박정희 시대가 끝난 직후인 83년, 서울은 부가가치 생산비중이 16.6%로 줄어든 대신 경기도가 26.3%로 늘었다.

그러나 서울.경기를 하나로 묶어보면 20년 전이나 큰 차이가 없으며 그 추세는 90년대에도 계속된다. 수도권 외의 지방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 1인당 지역총생산 = '1인당 지역총생산 (GRP)' 추이를 보면 지역간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GRP는 광공업분야뿐만 아니라 농어업.서비스업까지 포함된 지역별 부 (富) 의 총생산량을 의미하며 '1인당 총생산' 은 지역총생산을 인구비로 나눈 것. 박정희 시대 초기인 68년의 경우 서울이 압도적으로 높은 생산수준을 보였으며 다음이 경남, 그리고 전남이 가장 낮았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 말기인 76년에 들어서면 경남과 경기지역이 서울 수준에 근접했다. 공업화가 수도권과 경남지역 중심으로 추진됐기 때문이다. 서울은 조금씩 처지기 시작, 85년에는 경기.경남보다 떨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서울사람들이 못살게 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서울의 생산공장들이 경기도로 빠져나갔을 뿐이다.

경기.경남 중심구조는 90년대 들어서면서 더욱 뚜렷해진다. 최근 통계인 96년의 경우 충북이 가장 높은 1인당 총생산을 기록했다. 지역간의 격차가 상당히 좁혀진 것도 알 수 있다.

◇ 인구의 서울집중 = 공업화는 여전히 수도권과 영남중심이면서 1인당 지역총생산은 전국이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인구이동 때문이다.

지역별 인구비를 보면 박정희 시대가 시작되기 직전인 60년의 경우 충청 : 호남 : 영남의 인구비는 거의 2:3:4의 비율이었고, 서울인구는 전국인구의 9.8%에 불과했다.

그러나 산업화과정에서 호남.충청의 인구가 급속히 줄었다. 특히 호남의 경우 박정희 시대인 60, 70년대에 가장 많이 줄었다. 반대로 서울과 경기는 급속히 늘었다. 영남도 약간 줄었다.

공업화가 진행된 영남지역과 달리 공업화에 뒤떨어진 호남.충청지역 사람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이동한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이 몰린 수도권의 경우 부가가치 생산비중은 많으나 1인당 총생산은 떨어졌고, 인구가 줄어든 지방의 경우 1인당 총생산이 늘어나 평준화가 된 것이다.

◇ 부 (富) 의 서울집중 = 문제는 부의 서울집중 현상이다. 생활수준과 가장 밀접한 지역별 소득격차를 살펴보면 이같은 현상이 뚜렷하다. 85년 지역별 1인당 소득세 징수실적을 환산, 전국평균을 100으로 했을 때 서울이 227로 타지역을 압도한다.

다음은 부산으로 서울의 절반 수준인 123.나머지 지역은 모두 평균 이하며, 서울지역 평균의 4분의1에 불과하다.

경기.경북이 나은 편이고, 전남북이 최저수준이다. 최근 통계를 보면 이같은 서울집중 현상은 여전하다. 97년 1인당 소득세 징수실적을 보면 부산과 경기지역은 줄었고, 나머지 지역은 조금씩 늘어나 지방의 경우 평준화 경향이 뚜렷하다.

지방 중에서는 부산이 가장 많이 떨어졌다.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전남. 그러나 여전히 호남지역이 최하위권이다.

*** 지역갈등 서울 와서 불거져

부 (富)가 집중되는 서울로 사람이 몰리고, 서로 여러 지역출신들이 어울려 살면서 서울이 지역갈등의 체험현장이 돼 왔다.

압축성장과 함께 서울에 인구가 급격히 집중되는데 출신지역별로 서울에서 차지한 위상이 조금씩 달랐다.

서울 거주자들 중 지방출신들의 학력수준과 소득수준을 조사해본 결과 호남과 경기출신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히 학력수준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서울 토박이들이 가장 수준이 높았고, 지방출신 중에서는 경남과 경북이 높았다. 충청도 출신들은 중간수준. 이같은 경향은 지난 79년 서울시가 조사한 '저소득 시민 실태조사' 에서도 드러난다. 저소득층에는 호남출신, 특히 전남출신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영남권 출신들은 적으며, 그중에서도 부산.경남 출신은 드물다.

생활이 어려운 호남출신들이 일자리를 찾아 상경, 서울의 저소득층으로 많이 편입됐다는 얘기다. 반면 공업화의 중심이었던 영남권 사람들은 대다수가 고향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일부 서울로 이동한 사람들은 고향에서보다 좋은 일자리와 삶을 찾아 상경했기에 상대적으로 높은 위상을 차지했던 것이다.

이같이 지방출신간의 소득수준 차이는 저소득층이 많은 호남에 대한 지역편견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역갈등과 편견은 계층갈등의 양상을 반영한 것이다. 박정희시대의 압축성장과정에서 파생된 지역간의 불균형이 서울에서는 지역민간의 격차로 나타났고, 이것이 다시 지역적 편견과 갈등의 한 원인으로 작용해온 것이다.

*** 부산경제 가장 '울상'

최근 경제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통계인 실업률과 부도율을 보면 부산지역의 사정이 다른 지역보다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지역 부도율의 경우 IMF사태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미치기 전인 97년에는 전국 16개 지역 중 11위로 낮은 편이었다. 96년에는 14위로 더 낮았다.

그러나 IMF사태가 터진 97년 12월 부도율이 2.10으로 급등했다. 이어 98년에 들어서면서 부도율은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98년초 금융구조조정과정에서 부산지역 중소기업 대출을 많이 맡았던 동남은행과 종금사 등이 대거 퇴출당하면서 중소기업들이 무더기로 도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부산의 부도율은 99년 들면서 상당히 수그러들어 지난 2월 전국 7위(0.41%) 로 물러섰다가 4월에는 다시 부도가 늘면서 5위로 뛰어올랐다.

지난 4월 전국 최고 부도율은 강원도. 강원도의 경우 지난 97년 전국 14위에서 98년 7위로 부도율이 급격히 높아지는 추세다.

실업률의 경우는 부산이 지난 96년 이래 계속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해마다 늘어나 지난 4월에는 9.6%나 됐다.

이같이 높은 실업률은 부산지역의 산업화를 이끌어온 신발.목재.섬유산업 등이 사양산업화되면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산업이 들어서지 못한데다 새로운 산업으로 유치된 삼성차마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밀레니엄 기획취재팀=김창호.오병상.유권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