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DJP 신당,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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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각제 개헌 유보에 이어 여권을 통합해 신당을 만든다는 DJP 밀실논의가 밝혀져 다시 정국에 큰 파문이 일고있다. 요즘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 김종필 (金鍾泌) 총리를 축으로 하는 여권내에서 자고나면 새 사실이 밝혀지는 식이어서 국민은 물론 여권 인사들조차 헷갈리고 허둥대고 있다. 우리 정치가 어디로 가는지, 뭐가 뭔지 통 알 길이 없는 형국이다.

집권측은 물론 개헌유보도 할 수 있고, 정당통합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제는 뚜렷한 명분이 있어야 하며, 투명한 논의절차와 당당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국민도 방향을 잡고, 정계도 가닥을 잡아 합리적인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아침에 눈만 뜨면 예측 못한 정치상황을 불쑥불쑥 접하게 돼서야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매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여권의 신당창당론과 관련해 집권측에 고언 (苦言) 하고자 한다. 우선 金대통령과 金총리는 신당창당과 그에 앞선 내각제유보에 관한 밀실협의 내용부터 당당하게 밝혀주길 바란다.

먼저 왜 내각제 공약을 이행할 수 없는지에 대해 진솔한 설명을 하고 그 연장에서 신당창당의 당위성을 밝히고 두 여당간 통합을 질서있게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순리고 정도 (正道) 다.

이런 공개화 과정이 없는 한 金대통령이 90년 3당통합 (민자당) 을 권력 나눠먹기의 밀실야합이라고 몰아붙이면서 반발했던 전철을 그 스스로 뒤집어쓸 뿐임을 직시해야 한다.

둘째, 이른바 2+α 통합이 지향하는 이념과 노선이 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노선과 색깔면에서 차이가 많은 정당이다. 여기에 다시 재야.시민단체, 야당인사들까지 끌어들인다는 구상인데 이는 자칫 정체성이 없는 '비빔밥 정당' 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뉴 밀레니엄에 대비한 전국적 국민정당을 창당한다는 기본정신이 정체성의 혼란을 주는 듯한 이런 통합방안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우리는 이해가 안간다. 또 참여자의 지역성만 포괄하면 전국정당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왜, 무엇을 위한 신당창당인지부터 분명히 하는 게 옳다. 오로지 총선승리를 위해 잡다한 세력을 끌어모으는 선거용 정당이 돼서는 안될 것이다. 정당이라면 일정하게 내세우는 '대의 (大義)' 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셋째, 앞으로 두 여당간 내각제 처리와 통합문제는 두 지도자간 비밀논의 구조가 아닌, 정상적인 공론화의 틀에서 진행되고 집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밀실합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한 지도자간 야합으로 비쳐질 우려가 크다. 지도자의 호령 하나로 정당이 뭉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전근대적 정치행태를 반복해선 안된다.

여권지도자들은 신당을 만들더라도 국민의 이와 같은 우려와 의혹을 해소하는 합리적 자세와 당당한 모습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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