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방송정책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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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1980년대에 우리나라 신문 산업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동아일보는 80년 265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89년에는 매출 규모가 940억원에 이르렀다. 10년 동안 3.6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같은 기간에 매출 규모를 5.7배 늘렸고, 조선일보는 6.5배나 늘렸다.

이 시기에 신문사가 경영기반을 확장한 요인은 무엇인가? 첫째는 광고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80년에는 우리나라 총광고비가 고작 2750억원에 지나지 않았으나 89년에는 2조원을 넘어섰다. 10년 동안 광고비 지출이 7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에 국민총생산액이 약 네 배 증가한 것에 비하면 광고비 신장 추세가 놀랄 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이른바 신군부의 언론정책 덕분이었다. 신군부는 광고시장이 몰라보게 커졌는데도 언론시장에 대한 신규 진입을 철저히 막았다. 감히 누구도 진입 장벽의 위헌성을 내놓고 따지지 못했다. 80년대는 그런 시대였다. 광고시장은 커지는데 진입 장벽이 강고하다 보니 기존 언론사는 기득권을 누리며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지금 신문 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 두 가지 요소가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달라졌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나라에서 광고시장은 정체를 면치 못한 지 오래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앞으로 경기가 살아나면 광고 사정도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이 더 우세하다. 선진국의 광고비 지출이 대체로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미 우리나라 광고비 지출도 GDP 1% 수준에 이르러 정체가 예상된다는 국제추세론이 설득력이 있다. 우리 경제는 내수가 아니라 외국시장을 주로 공략하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내수를 겨냥한 광고가 이미 꼭짓점에 이르렀다는 특수상황론 또한 그럴싸하게 들린다.

둘째, 이제는 누구나 그리고 어디서나 원하면 신문을 발행할 수 있다. 거기다 케이블 텔레비전이니 위성방송이니 IPTV니 인터넷이니 하는 신종 매체가 다투어 등장했다. 광고주가 신문이나 방송에 지출하던 광고비를 인터넷을 비롯한 신종 매체로 돌리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 신문 산업의 미래는 한마디로 암울하다.

신문 산업의 이런 사정을 헤아려 정부와 여당은 신문사의 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미디어법을 통과시켰다. 그 법이 절차적 정당성을 거친 것인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곧 결론을 내리겠지만, 그와는 관계없이 정부당국이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 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가 앞으로 어느 정도 성장할 것이며, 그에 따라 광고시장이 어느 규모가 될지에 대한 과학적인 추정치를 산출해 발표하는 일이 그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광고비는 제작비까지 합해 개략적으로 10조원 규모에 이르고 있다. 그 가운데 3조~4조원가량이 방송 광고로 지출된다. 현재로서는 이 파이를 여러 방송사가 나눠 먹으며 하나같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 실정이어서 앞으로 방송광고 시장 규모가 4조원을 넘기기 어려울 전망이라면 종합편성 채널과 보도채널을 하나씩 늘리는 것마저 버겁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 많은 종합편성 방송과 보도채널을 허용하면 광고시장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광고시장이 예전과 같은 성장세를 기록하기 어렵다면, 이 시점에서 공영방송인 KBS의 경영정책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공영체제로 시청료도 받고 광고도 하는 현행 구조는 기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KBS에서 시청료를 올리고 싶어 하는 모양인데 올릴 바에야 대폭 올려 시청료 수입만으로 공영 목적에 부합하는 방송을 하게 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미룰 이유가 없다. KBS가 시청료만으로 여러 채널을 운영하는 것이 벅차다면 일부 채널의 민영화도 생각해야 한다.

신문시장의 진입 장벽은 허물어진 지 오래다. 물론 그 진입 장벽을 새로 구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전파의 특성상 방송시장의 시장진입은 정책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바로 그런 특성을 적절하게 구사하지 않으면 신방겸영 허용은 곧 언론시장 전체의 혼돈을 유발할 개연성이 크다. 당국이 치밀한 계산표를 제시하지 않으면, 방송정책에 대한 불안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언론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