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종합청사 화재 심각성 알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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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종합청사 화재는 충격적이다.

예사롭게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시장.호텔.학교.지하철역.청소년수련원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허다하게 불이 나 국민을 놀라게 했지만 국가행정의 상징인 정부종합청사에 불이 났다는 것은 다른 화재와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와 충격을 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정부청사가 어디 보통 건물인가.

국사 (國事) 를 총괄하고 하부기관을 지휘하는 국가의 중추기관들이 모여 있는 곳이 정부청사다.

여기에 불이 났다는 것은 곧 정부의 안전관리가 형식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 뿐 아니라 국민과 하부기관에 대한 중앙정부의 모범과 지도력에 상처를 남겼다는 상징적 의미가 없을 수 없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일선 부서에 책임을 묻고 안전대책을 강조하던 국가의 심장부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했으니 이래서야 무슨 체면으로 하부조직을 지휘하겠으며, 어찌 영 (令) 이 서겠는가.

특히 이번 화재를 계기로 드러난 정부청사의 방화시설 등 재난관리 실태를 살펴보면 대형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앵무새처럼 강조해온 기본사항들을 스스로 무시하고 있었음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가기밀을 포함한 주요 문건들을 관리하고 수많은 민원인들이 출입하는 건물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스프링클러가 없고, 비치된 소화기도 대부분 10년 이상 돼 제대로 작동하는지조차 의심이 된다고 하니 화재에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고 할 것이다.

또 이제 와서 "청사가 30년 전에 지어진 것이라서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며 설치방침을 밝히고 화재경보시설과 당직근무수칙을 강화하겠다고 한 행정자치부 정부청사관리소의 후속대책이나, 화재원인을 놓고 책임 떠넘기기식 공방을 벌이는 통일부와 행자부의 행태 등이 어쩌면 대형사고 때마다 되풀이되는 그대로인지 답답할 뿐이다.

정부청사에 재난이 닥치면 그 피해와 여파는 일반건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인적.물적 피해뿐 아니라 정부정책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불로 대북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과 대북지원 서류가 훼손됐다고 하니 당장 관련업무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16분간의 불로 이 정도 피해를 보았으니 만약 불순세력의 범행 등 더 큰 재난이 닥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평소 안전관리뿐만 아니라 매사에 있어 중앙정부의 위신과 모범에 손상이 갈 일은 없는지 경각심을 갖고 챙겨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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