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킬 수 있는 공직윤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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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직사회 기강쇄신을 위해 '공직자 10대 준수사항' 이 총리훈령으로 제정됐다.

경.조사 때 화환.화분 주고받기가 금지되고, 직위를 이용해 경.조사를 알리거나 축.조의금 접수도 못하게 된다.

우리 공직사회가 어쩌다 이런 '10계명' 을 제정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지 한심한 생각도 든다.

공무원의 부패고리를 끊고, 사회 전반의 잘못된 경.조사 관행을 바꾸는 데 공직사회가 솔선한다는 뜻에서 그 불가피성은 인정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사생활과 관혼상제의 오랜 관습과 풍속을 강제성 지침으로 묶는 데 대해 공직사회의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고급옷 로비 의혹 사건에서 발단이 됐지만 일부 공무원의 문제를 전체의 부조리로 몰거나 경.조사비를 부정축재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공무원도 사람이고, 오랜 풍속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경.조사 때 부조금을 주고받는 것은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상부상조의 정신과도 상통하는 관행이다.

'서로 돕고 살자' 는 취지에서 곗돈 붓듯 부조금을 보내는 것이 어찌 공무원에게만 국한된 일이겠는가.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산하단체나 직무와 관련이 있는 기업체 등에서 뇌물성격의 부조금을 받아 한몫 챙기는 경우다.

실제 일부 공직자들에게서 이런 사례가 발견되고, 구조적 폐단으로 굳어진 분야도 있다고 들린다.

이는 물론 단속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흔치는 않다.

호화유흥업소와 의상실을 드나들고,가족.친지가 관용차를 사용하는 공무원이 전체 중 얼마나 될까. 이런 일부의 경우를 단속하기 위해 공직사회 전체를 옭아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자칫 공무원 사기만 떨어뜨리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

부패는 법과 규정만으로 근절되지는 않는다.

과장급 이상 공무원은 조의금은 물론 방명록 비치도 못하게 하고, 형제자매가 상 (喪) 을 당했을 때 공무원에게 오는 조의금만 접수를 금지시키는 등 이른바 세부지침은 구차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면서도 신문 등 언론매체 부음 난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고지는 할 수 있다고 하니 이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지켜질지 의문이다.

중요한 것은 공직자들의 양식이고, 스스로 이를 지키려는 마음가짐이다.

과거의 미풍양속도 시대가 바뀌면 물론 변해야 한다.

이 경우 공직자들이 사회통념과 상규 (常規)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케 함이 순리다.

윤리강령은 간단하고 명료할수록 좋다.

나열식 세칙이나 군더더기 식 후속조치 위주의 전시적 개혁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10대 준수사항에서 보는 정부의 의지는 높이 평가하고, 그것이 우리의 잘못된 경.조사 관행을 바꾸는 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너무 경직된 운영 보다는 현실에 맞는 신축성 있는 운영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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