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번역엔 번역투 문장이 없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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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미국 하코트 출판사의 제나 존슨 편집장은 “최근 미국 독자들의 외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번역된 한국과 일본·중국 등 아시아권 문학작품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문학작품 번역에서 잘 된 번역이 나오려면 한 작품에 대해 여러 버전의 번역이 있어야 합니다. 각 번역들에 대한 비교·검토를 통해 좋은 번역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이 작업을 수행하는 기관이 필요합니다.”(주느비에브 루-포카르 프랑스 파리 통번역대학원 조교수)

“캐나다에는 전문 번역가를 양성하고 인증하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시스템을 세워 양질의 번역가를 양성할 수 있는지 캐나다와 한국간 협력의 여지가 크다고 생각합니다.”(데니스 부스켓 캐나다 번역가협회장)

미국·프랑스·캐나다·중국 등지에서 온 문학 번역 관계자들이 한국의 문학번역 발전을 위한 조언을 쏟아냈다.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주연)이 개최하는 ‘세계번역가대회’를 하루 앞둔 22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올해로 3회째인 대회의 주제는 ‘번역의 질적 향상을 위한 방향 모색’. 중국 난징대 외국어대학 쉬진 교수, 영국 런던대 소아스(SOAS)의 더펑 리 번역학연구소장, 중국 지린대 한국어과 권혁률 교수,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 양한주 교수 등이 참석한다. 한국에서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기조 강연을 하고 정현종 시인이 발제자로 참가한다. 대회는 23~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홀에서 열린다.

간담회에서는 미국 하코트 출판사의 제나 존슨(32) 편집장이 단연 관심을 끌었다. 유명 출판사의 편집자라는 점, 김영하의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2007년 미국 시장에서 펴낸 점 등이 궁금증을 유발해서다.

-김영하의 작품을 어떻게 접하게 됐나.

“에이전트가 추천했다. 불어 번역판이 있어 읽어봤다. 도시의 소외감이랄까, 미국 독자들이 문화적 공통점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뭔가 다른 점도 있는 작품이라는 판단이 섰다. 문체도 독특했다. 마침 남미·아시아의 문학을 미국에 소개하려던 참이었다.”

-미국 시장에서의 반응은.

“지금까지 7500부 정도 팔렸다. 데뷔 작품이고 김영하가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 점을 고려하면 성공적인 결과다. LA 타임스 등 유망 신문사들이 호평했고, 작품을 인용하는 작가들도 있었다. ‘영화 같다’는 반응을 보인 독자도 있다. 그의 또다른 장편 『빛의 제국』을 내년 가을께 출간한다. 『나는…』은 페이퍼백이었지만 『빛의 제국』은 하드커버로 만든다. 프로모션 계획도 가지고 있다.”

-좋은 번역이란.

“번역투 문장이 없는 번역 아닐까.”

-소설 한 권 번역·출간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책에 따라 다르지만 1년에서 2년 정도다. 번역자가 1차 번역을 마치면 어휘 선택이 적절한지, 번역에 일관성이 있는지 등을 검토해 수정할 점을 알려준다. 이런 과정을 두 차례 정도 거쳐 번역을 마친다. 김영하의 작품 번역은 매끄럽다고 생각한다.”

-한국 문학은 미국 시장에 얼마나 알려져 있나.

“한국문학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있지만 알려진 작품이 별로 없다. 중국문학과 비슷한 것 같다. 반면 일본 문학작품은 보다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다. 하루키와 일본 만화,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덕이다.”

-한국문학 작품이 미국 시장에서 통하려면.

“대한민국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미국인들과 얼마나 비슷한지를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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