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시인 조카손녀 김유미씨 첫 문집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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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사랑이 구겨졌다/한 많은 노인네 이맛살처럼 /찌그러진 캔조각처럼/ 갈증을 풀어줄 핏방울 /보드라운 살갗도 없이 /썩지도 않는 살덩이를 자학하며/ 천년을 기다린다 //내 젊어 누군가에 무엇을 주었다오 /초경처럼 따끈한 피와 /열여덟 젖망울 //서른 넘은 여자에겐 매 해가 특별하다" ( '골다공증' 중)

감상적이면서도 은밀한 충동을 담은 시와 산문 그리고 그림이 든 첫 문집 '내 안의 야생공원' (신구문화사) 을 펴낸 김유미 (36) 씨.

사람들은 '모란이 피기까지는' 혹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로 각인된 시인 김영랑을 기억한다. 시인의 낭만적 경향을 곳곳에서 비쳐내는 김씨의 작은 할아버지가 김영랑이다. 그러니까 김영랑의 가손 (家孫) 인 셈이다.

전남 강진의 '영랑 생가' 에서 태어나 홍익대 미대를 졸업, 전남대.광주대에 출강하면서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번 책에서 서른 아홉 편의 글과 서른 일곱점의 그림을 선보였다.

성격과 외모가 누구보다 영랑을 빼닮았다는 소리를 듣는 그는 이번 문집에서 그림 설명에 머무르는 글 혹은 글의 장식품에 불과한 그림이 아니라 두 장르의 효과적인 교감을 이끌어내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끊임없는 자유에 대한 갈망, 앞으로의 나 혹은 지나온 나로 끊임없이 떠나고 싶은 욕망을 표현한 글과 일상 속의 단상들을 이미지화해 은유의 수법으로 표현한 그림에서 작가 그리고 화가로서의 면모를 읽게 한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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