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칼럼] 그래도 해야 할 교육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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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교육부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지난달 벌였다.

보름이 채 안된 기간에 교사 15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30여만 교원 중 절반 이상이 교육정책의 수장 (首長)에 대한 불신과 교육개혁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낸 중대한 '사건' 이다.

이는 단지 교육계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개혁과 그에 따른 반작용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는 점에서 중시해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한국교총이란 반세기 역사를 지닌 교원단체다.

그 전신이 대한교련이다.

보수적이고 때로는 어용단체라는 비난도 받아온 순하디 순한 단체다.

이 단체가 화가 난 것이다.

교원정년단축.수행평가.성과급제 등 교육부가 추진해온 개혁정책들이 교육개선은 커녕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교원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교육공황' 을 몰고 왔으니 개혁 책임자인 장관이 물러나야 한다는 게 교총 쪽의 주장이다.

나는 교육개혁이 막 시작된 지난해 11월 초 본란을 통해 교사의 자존심을 살리는 입장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개혁의 중요변수는 대학 무시험전형, 교원노조 합법화와 복수화, 교원정년단축이다.

모두가 개혁의 당위성을 지니고 있지만 개혁의 주체는 교사들이지 대통령도 장관도 아님을 환기시켰다.

교사를 개혁대상으로 몰지 말고 개혁주체로 맡겨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교사 1만여명이 무더기 명퇴를 신청하는 '교단 공황'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여기에는 공무원연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지만 차제에 관두자는 교사들의 허무주의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짓밟힌 자존심과 계산된 현실주의, 그리고 이를 충동질하는 단체 세불리기 작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장관사퇴 서명으로 발전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육개혁 방향이 근본적으로 잘못됐고 교육부장관이 퇴진하면 교육공황 사태는 사라질 것인가.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개혁방향은 바로 된 것이라고 나는 평가한다.

개혁방향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학교교육이 바로 서야 교육이 제대로 된다는 것이다.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서 창의성을 키우는 토론형 학교교육으로 바꾸고 이를 토대로 한 학교성적과 수행평가, 그리고 수능성적이 대학전형자료로 다양하게 제공돼야 교육 개혁이 시작될 수 있다는 방향설정이다.

이는 정부만이 주도할 일이 아니라 교사가 앞장서 주장하고 추진해야 할 교사 본연의 업무에 속한다.

이를 등한히 했으니 대입제도에 따라 학교교육이 흔들리고 학원이 번창하며 사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올라가지 않았는가.

두번째 개혁방향이 교사의 자질.능력 향상이다.

농경시대의 교원교육을 받은 교사가 첨단시대의 아이들을 교육시키려면 부단한 자기계발과 재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달라진 시대환경과 바뀌는 교육여건에 합당한 교육을 하자면 교사 스스로 또는 교원단체가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으니 정년단축을 해서라도 새 피를 넣자는 주장이 국민적 여론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정년을 2, 3세 낮춘다고 교사 자질과 능력이 당장 개선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으면 교사도 퇴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 없이는 교원개혁은 이뤄질 수 없다고 본다.

이제 막 그 첫걸음을 뗀 데 불과하다.

교사들이 여기서 집단적으로 반발한다면 스스로의 개혁 자체를 거부한다는 말밖에 되질 않는다.

정부의 개혁방향이 옳다고는 하지만, 힘이 있는 임기초에 한꺼번에 몰아붙여야 한다거나 내 재임 중 개혁을 달성했다는 한건주의 졸속개혁에 치우치면 개혁주체가 반개혁세력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정부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절차상 불가피한 혼란을 기화로 개혁주체여야 할 교사들이 개혁 자체를 거부하고 개혁추진세력을 반개혁으로 모는 처사는 교사 스스로 개혁 주체임을 포기하는 행위다.

교원의 자질 향상을 위해선 교원양성체계의 개편, 교직의 개방화.다양화를 모색해야 하고 능력중심의 승진.보수체계 도입으로 교사의 거름장치를 통해 거듭 태어나는 교사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개혁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개혁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정년단축 하나로 개혁 끝이라고 손을 터는 교육개혁이어선 안된다.

개혁 시작에서 생겨난 혼란을 교육 주체들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때 개혁대상 아닌 개혁주체로서 거듭 태어날 수 있다.

이제 개혁은 우리의 일상적 업무에 속한다.

권영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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