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화려함속의 미흡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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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주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의 유고 공습사태를 보도하면서 중앙일보는 어느 일간지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시각적으로 단연 돋보이는 화려한 볼거리를 연출했다.

다양한 사진에 공습 예상도 및 현황도, 양측의 전력 비교 그래픽 등 눈을 '즐겁게' 하는 기사들로 넘쳤다.

개인적 관점에서 나는 신문.방송이 전쟁을 '볼거리' 로 보도하는 데 강한 저항감을 느낀다.

그러나 미디어의 그런 관행은 월남전 이후 수십년에 걸쳐 이미 '세련됨' 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터인데다 '읽는' 신문과 함께 '보는' 신문을 요구하는 독자들도 많은지라 그걸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보는' 신문이란 시각적 요소들이 문자보다도 효과적인 정보 전달력을 가지게 될 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번 경우 그림 자체는 훌륭했지만 정보 전달력은 아주 약했다.

한가지만 예를 들자. 25일자 3면에는 공습 예상도와 함께 나토병력과 유고병력을 비교한 그래픽이 등장했다.

이름은 '비교표' 지만 그 기능을 못했다.

유일하게 비교 가능한 것은 양측의 병정수였다.

나머지 군함.잠수함.비행기.방공병력의 수치 열거 같은 것은 프리깃함 4척과 곤잘레스 군함 2척간의 차이가 무엇인지, 스텔스기와 미그기의 성능이 어떻게 다른지를 모르는 비전문가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동반된 문자기사도 그림의 내용을 글로 반복하고 있을 뿐 어느 쪽이 어떤 상황에서 어느 정도로 우세할 수 있는 것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이런 미흡함은 여러 곳에서 보였다.

25일부터 집중적으로 무려 10페이지가 넘는 보도를 했는데 정보의 양은 많았지만 국제사회의 많은 행위자들이 유기적으로 연관돼 벌이고 있는 이 상황이 과연 어떤 성격의 장기판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조망하기에 필요한 분석.설명은 충분치 않았다.

예컨대 이번 미국의 공습은 유고에 대한 응징뿐만 아니라 미국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중국.러시아.북한 등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있다고 했다.

이라크사태 때와 달리 이번 경우는 완전한 내정 간섭성의 무력침략인데 미국은 유엔 동의 등의 절차를 무시했다.

왜? 그런데 무시당한 유엔 사무총장은 중립을 지킨다.

왜? 유럽 국가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공습에 합세했다.

왜? 중국.러시아는 자신들과 상의없이 감행한 이 공습을 비난했지만 볼멘소리를 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별로 없다.

그런데 미국은 이런 종류의 공습에서 크게 이득을 본 적이 없고 이번도 그럴 공산이 크다.

그런데 왜 계속하나. 궁금증은 꼬리를 문다.

92년부터 유고는 무려 8년째 내전을 계속해 왔다.

그동안 퍼부어진 탄약과 살상무기들은 모두 어디서 오는 것인가.

겉으로 유고사태에 진저리를 치는 서방국가들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인가.

러시아가 여전히 무기 공급책으로 전쟁을 뒷바라지하는 것인가.

이 끝나지 않는 살상과 잔혹함은 과연 유고연방 구성원들의 종족.종교라는 원초적 수준의 집착에만 원인을 물을 수 있는 것인가.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해설 같은 무거운 기사를 싣지 않은 것은 일반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의도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평범한 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의문에 꼼꼼하게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내용은 빈약하고 물량만 엄청 동원해 눈요깃거리로 관객을 사로잡으려는 할리우드 전쟁영화와 흡사한 기사가 돼 버릴 위험이 있다.

박명진 서울대교수.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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