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쓰러지는 '동심의 비극'…서방언론들 현지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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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세계 각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내란의 최대 피해자는 어린이들이다.

기아 (饑餓)에 시달리고 심지어 노예로 팔리는 일까지 버젓이 벌어진다.

어른들의 잘못 때문에 어린이들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비극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서방언론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 비참한 현실을 현지르포로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 시에라리온 = "지난 3월 1일 낮. 서아프리카 평화유지군 (Ecomog) 과 반군간에 치열한 전투와 주민 학살이 벌어지던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의 중심가. 평화유지군 측의 나이지리아 군인들이 한 어린이에게 뭇매를 때리고 있었다.

울부짖는 어린이는 입술이 터지고 이마가 찢겨 피를 마구 흘렸으나 폭행은 계속됐다.

병사들은 이 소년을 반군병사라고 했고 이는 사실이었다.

시에라리온 정부관리가 말리는 바람에 간신히 죽음을 면한 이 소년은 앳된 얼굴로 보아 10세도 채 안돼 보였으나 스스로 13세라고 했다.

이름이 모제스라고 밝힌 소년은 그날 저녁 유엔이 운영하는 아동 난민캠프로 보내졌다.

하지만 그는 다음날 아침 사라졌다.

이번에는 정부군이 그를 징집해간 것이다. "

영국 BBC방송이 지난 2일 보도한 내용이다.

8년째 밀고 밀리는 치열한 내전을 벌이고 있는 시에라리온에서는 이처럼 어린이들이 강제징집돼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판단력이 없어 시키는 대로 잘 따르고 갈 데도 없으니만큼 지도부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는 기막힌 이유에서다.

어린이들은 전투가 없는 동안에는 시민이나 포로에 대한 학살과 고문도구로도 활용된다.

이런 어린이 병사가 시에라리온에만 1천명이 넘는다.

국제사면기구는 아프리카 전역과 미얀마.스리랑카 등 전세계를 통틀어 미성년 병사가 현재 30만명을 넘고 있다고 지난 1월 추정발표한 바 있다.

◇ 앙골라 = 미국 뉴욕타임스지는 지난 1월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앙골라 전쟁고아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도했다.

"피골이 상접한 10명의 어린이들이 수도 루안다의 하수구에서 구석에 고인 구정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중 이름을 오스발도 밍고라고 밝힌 한 소년은 자신이 13세라고 했다.

굶주림으로 인한 부황병으로 배가 불룩 나오고 피부가 온통 터 있는 이 소년은 10세도 채 안돼 보였다.

전쟁고아인 이들은 내란이 벌어지고 있는 전투지역에서 적십자 헬기에 의해 수도의 한 수용소로 옮겨졌다.

하지만 수용소에서 덩치 큰 아이들에게 얻어맞고 동냥해온 돈을 빼앗기자 이들은 수용소에서 뛰쳐 나왔다.

그 뒤 하수도가에 살며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아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 나온 일행 중 두명은 이미 죽었다고 했다.

한명은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다른 한명은 길거리에서 굶주린 개에 물려 죽었다.

뉴욕의 도둑 고양이보다 나을 게 없는 삶이다. "

◇ 코소보 = 이런 현상은 아프리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의 15일자 보도.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주민간의 민족갈등으로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신유고연방의 코소보주. 파리에서 열리는 평화회담 재개를 하루 앞둔 14일 오후 코소보의 주도 프리슈티나 북부의 코소브스카 미트로비차의 한 병원에서는 두 소녀가 나란히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이날 정오쯤 시장에서 폭탄테러가 발생, 8세 소녀는 두 다리를 모두 잃었고 13세의 또다른 소녀는 한쪽 다리와 한손의 반을 날려버린 것이다.

누구도 이 어린 천사들의 충격을 치료해줄 수 없으며 그 이유를 설명해줄 사람은 더욱 없다. "

◇ 에티오피아 = BBC방송은 3월 1일 가뭄으로 전국민이 기아선상에 시달리는 가운데 이웃 에리트레아와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눈뜨고 볼 수 없는 현장을 보도했다.

"굶주림으로 뼈만 남은 10세 가량의 소녀를 난민캠프에서 만났다.

현재 수년째 국경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접경지역인 바드미주에서 온 이 소녀의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로 뭉텅 잘려나가 있었다.

폭격기의 공습이 소녀의 다리를 앗아간 것이다.

위성통신과 인터넷을 쓰고 있는 첨단시대에 기아와 전쟁이 한 소녀를 무참히 파괴하는 현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수천만명의 생명과 수억명의 행복을 앗아간 20세기가 저물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전쟁으로 인한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어른들은 21세기를 '자신이 그려오던 것' 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그 21세기의 주인인 어린이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정녕 인류는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가.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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