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 칼럼

무엇을 남길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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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지구상 모든 생물의 행동에 궁극적이고 공통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기 번식과 관련 있을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유전학자 브라이언 사이키스는 『아담의 저주』라는 책에서 남자들이 권력 지향적이고 권모술수에 능한 것은 남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Y유전체의 강한 자기 번식 성향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로 지금 스코틀랜드의 성씨 가운데 맥도널드·맥앨리스터·맥두걸·맥도넬 모두가 소머레드라는 한 바이킹의 후손들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당시엔 무모했을지 모르지만 소머레드가 왕에 오른 덕분에 훗날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었고 또 그의 유전자도 널리 전파됐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지 자손을 많이 낳는 게 아니라 권력과 재산도 함께 남겨 줘야만 또 그들도 성공하고 번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키스는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남자들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속성은 Y유전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사이키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의 행동과 생각은 알게 모르게 우리 몸 안의 아주 작은 유전체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꼴이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 나는 생각을 조금 달리한다. 미국의 철학자 대니얼 데넷은 동물 가운데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기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집착에서 해방돼 있는 존재라고 한다. 그 예로 우리가 배우자를 고를 때 내가 저 사람과 결혼하면 훗날 몇 명의 손자와 증손자가 생길 것이라고 해서 선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남기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는 것일까? 때로는 계백처럼 자기의 가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데넷은 그것을 소위 ‘아이디어’, 즉 사상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진짜 남기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철학·신념·지식과 같은 정신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내 자식에게 남겨 주려고 하는 우리의 행위도, 그래도 그가 남들보다 나의 유지를 잘 이어받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비록 생물학적으로는 자손을 남기지 않았더라도 석가와 예수 같은 종교 창시자나 새로운 지식 창출에 기여한 과학자·사상가들이야말로 정말 성공한 인간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훌륭한 정신적인 유전자들이 많이 생산되고 퍼지고 또 오랫동안 이어지는 곳이 아닐까 싶다.

이상묵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