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학 다룬 이탈리아 작가 파피니 '악마이야기'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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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악마주의' 는 간헐적으로 고개를 내민다.

'다크 엔젤' 같은 영화를 통해 아니면 '데스 메탈' 음악, 때로는 베네통 광고의 '신성모독' 이나 영국에서 급진성향을 비꼬는 표현으로 '악마의 눈' 이라는 정치포스터에도 나붙는다.

일상의 악마성은 오컬티즘 (신비주의) 과 함께 세기말적 음울한 분위기에 편승하기 일쑤다.

악마는 가끔 책으로도 모습을 드러낸다.

89년 '악마의 시' 로 회교를 모독했던 영국작가 샐먼 루시디는 아직까지 암살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올 노벨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경우도 '예수의 제2복음' 에서 악마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교황청의 반발을 샀다.

최근 이탈리아의 문필가 조반니 파피니 (1881~1956) 의 '악마 이야기' (송병선 옮김.예문.7천5백원)가 출간됐다.

책은 우리에게야 지금 알려졌지만 1953년 저술된 것으로서 '세기말' 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당시 유럽에서 '악마 이야기' 는 가톨릭교회로부터 금서 (禁書) 의 기로에 섰다.

저자는 스물네살 나이인 1905년 '악마가 내게 말했다' '유혹받은 악마' 등을 통해 기독교를 준엄하게 비판했던 전력의 인물이기도 하다.

파피니는 '왜 악마를 알아야 하는가' 라는 말로 글을 풀어간다.

"악마는 사탄이고 땅에 떨어진 천사 루시퍼다. 그것은 적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 적을 미워해도 좋은 것일까. 오히려 예수는 악마를 영원한 형벌로부터 해방시키기를 소망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새로운 시각과 정신으로 악마를 바라봐야 한다. " 저자에 따르면 악마를 피하는 예술가는 이미 자격상실이다.

그래서 화가 미켈란젤로와 시인.소설가 괴테 ( '파우스트' ).보들레르 ( '악의 꽃' ).로트레아몽 ( '말도로르의 노래' ).랭보 ( '지옥의 계절' ) 등에서 악마와의 화해 가능성을 찾은 것은 다행스럽다.

또 타르티니 ( '악마의 트릴' ).파가니니 ( '마녀들' ).베를리오즈 ( '메피스토펠레스의 천벌' ) 등 음악가의 바이올린 선율에도 머물러 있는 악마들. 그래도 충돌현상은 여전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제자 살비아누스는 "악마는 도처에 존재한다" 고 말하지만 막심 고리키는 "악마는 우리의 사악한 이성이 만들어낸 창작품일 뿐 실제 존재하진 않는다" 고 비껴선다.

이에 파피니는 "악마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정반대다. 우리 인간보다도 하느님의 존재를 더 굳게 믿는다" 고 글을 잇는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이 책은 '악마학에 관한 최초의 불안전 스케치' 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래의 누군가가 '악마전서' 를 집대성할 때 다시 빛을 발할지 모를 일이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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