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세상보기]은행을 터는 세가지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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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해 예산안을 심의하는 국회에서 금융기관 구조조정 자금으로 7조원을 지출하는 계획에 대해 말이 많이 나왔다.

모든 의원들은 어떡하다 은행들이 이렇게 부실경영에 허덕이게 됐는가 의문을 나타냈다.

은행은 돈이 많고, 또 많이 꾸어주는 곳이라 도둑맞기도 쉽고 떼이기도 쉬운 곳이다.

결국 부실경영이 초래된 원인은 '도둑맞거나 떼인 돈이 많을 때' 로 귀착된다.

그러나 이것은 피해자가 하는 소리고,가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은행 돈을 많이 털었을 때' 로 말이 바뀌어진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방법으로 은행을 털까. 국회 조사관들이 수집한 사례를 슬쩍 들여다 봤다.

①비씨 (BC) 카드 방법 요즘의 은행털기는 고도로 전문화.전자화 (電子化) 됐다.

대구은행의 비씨카드 위조 방법은 최첨단을 달린다.

13개 은행이 가맹한 비씨카드는 수수료가 싸고 이용범위가 넓은 신용카드. 누군가가 이 카드를 위조해 11월 21일부터 지금까지 1백30여명의 계좌에서 1억3천만원을 인출했다.

은행은 계속 늘어나는 피해액을 꼼짝없이 배상하게 됐다.

고객의 계좌번호는 그렇다 쳐도 비밀번호까지 있는데 어떻게 위조가 가능했을까.

②전북은행 방법 지난 6월 이 은행의 한 과장이 거래 기업의 이름으로 당좌대출을 신청하고, 그 돈을 챙겨 그대로 홍콩으로 줄행랑쳤다.

횡령액수는 61억원으로 사상 최대규모다.

흑인가수 해리 벨러폰테의 돈을 훔친 마틸다가 도망친 곳은 베네수엘라. 그곳은 한산한 곳이지만 이 과장이 도망친 홍콩은 잠적하기 아주 좋은 곳이다.

돈 찾기는 다 글렀다.

③부실대마 (不實大馬) 방법 바둑에 비유하면 거대기업은 대마다.

그런데 대마불사론이 국제통화기금 (IMF) 시대에서는 대마역사 (大馬亦死) 론으로 바뀌고 있다.

대마도 역시 죽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마가 은행을 실컷 턴 뒤에 죽는데 있다.

죽은 제철 대마는 은행으로부터 턴 돈만 3조원, 자동차 대마는 약 7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도 수많은 부실대마가 은행을 털고 있는 중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털린 돈을 합치면 (말하자면 부실채권을 따진다면) 적게는 1백18조원, 많게는 2백조원이 된다고 한다.

부실대마의 책임자는 은행을 턴 뒤에 감옥에 간다.

도움을 준 깃털이나 방조한 행장도 마찬가지다.

결국 한국의 은행털기는 삭막하다.

외국에선 어떤지 알려고 국회 조사관들은 추리소설에 나타난 방법까지 주목했다.

미국 헤럴드 다니엘스의 단편 '은행을 터는 세가지 방법' 을 소개하면 - . 25년을 한 은행에서 근무하고도 몇푼의 위로금만 받고 쫓겨난 주인공은 자신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은행을 터는 세가지 방법 No.1' '…No.2' 라는 소설을 써서 출판사에 잇따라 응모한다.

이 소설에는 예금이 없으면서도 수표를 남발하고 그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는 수법이 나온다.

또 마그네틱 잉크와 컴퓨터를 조작하는 방법도 소개된다.

하도 수법이 교묘하고 사실적이라 출판사는 출판을 포기하고 은행협회에 가능성 여부를 묻는다.은행협회는 이런 사기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소설을 출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판권을 사들인다.

그리고 'No.3' 를 쓰기 전에 작가를 만난다.

은행 거물들과 마주한 작가는 세번째 방법은 완전히 합법적이라고 운을 뗀다.

결국 제3편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주인공을 연봉 2만5천달러의 은행 고문으로 채용하는 계약서가 체결된다.

서명이 끝나자 은행 간부들이 묻는다.

"자, 은행을 터는 세번째 방법이 뭐요?" 그가 조용히 대답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세번째 방법이오. " 이처럼 소설적인 은행털기는 아무에게도 피해를 안준다.

그러나 한국적인 그것은 사방에 피해를 끼친다.

털린 은행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비용이 국민 부담으로 넘어오기 때문이다.

김성호(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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