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약속'…진부한 최루성 멜로 아쉬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96년 연극무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돌아서서 떠나라' (이만희 원작)가 '약속' 이란 제목으로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4년에 한 번씩 연출을 맡아 스스로를 '올림픽 감독' 이라 소개하는 김유진 감독의 작품이다.

'그대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금홍아 금홍아' 등을 연출한 김감독이 연극에 반해 년여 준비 끝에 완성했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여의사와 조직보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여의사인 채희주 (전도연) 는 부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 공상두 (박신양) 눈의 붕대가 풀어지는 순간 그의 맑은 눈을 보고 사랑에 빠져버린다.

"나에겐 약속이란 말을 어울리지 않는다" 는 깡패 두목과의 사랑은 그것이 깊어질수록 불안하기만 하고, 그래서 더욱 애틋해보인다.

감독은 이 멜로드라마에 조직끼리의 싸움을 빌어 액션을 펼쳐내고 예기치 않은 상황과 허를 찌르는 대사 등을 통해 코미디를 가했다.

이별을 눈앞에 두고 두 연인이 성당으로 달려가는 장면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독특한 성당의 자태와 어울려 환상적이고도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 냈다.

'빛나는 조연' 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정진영의 열연은 이 영화의 또다른 미덕이다.

하지만 상투적인 감상에 의존한 전개에 의해 영화의 감동은 손상당하고 말았다.

지하주차장에서의 조직 대결, 혹은 룸싸롱에서의 칼싸움은 너무도 낯익은 액션장면에 불과하다.

사랑하는 여인의 운전연습을 위해 부하들을 내세워 차도를 막아버리는 설정은 그 상상의 달콤함에도 불구하고 신선하지 않다.

'약속' 은 몇가지 점에서 제작사 신씨네의 전작인 '편지' 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꿈꾸는 사랑을 소재로 했다는 점, 그 사랑이 비극적이라는 점, 관객들보다 주인공들이 먼저 눈물범벅이 되고마는 것도 그렇다.

신씨네측은 "이 영화를 '편지' 의 연장선에서 보지 말아달라" 고 주문하지만 결과적으론 최루성 영화를 연이어 내놓은 셈이다.

'약속' 은 영화사 신씨네의 창립10주년 기념작이다.

하지만 남다른 기획력으로 10년간 많은 작품을 선보여온 영화사가 멜로영화의 상투적인 반복하는데 머물렀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이은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