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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장의 프리미엄 전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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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중국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자 ‘검역을 하겠다’는 기내방송이 나왔다. 조금 후 마스크를 쓰고 제복을 입은 여성들이 들어오더니 작은 기구를 이마에 대고 승객들의 체온을 일일이 재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에 한번 혼이 난 중국인의 철저한 대응이구나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여전히 철저한 통제사회임을 느낄 수 있었다. 공공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는 다소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다. 소수민족과 사회 소요 사태에 대한 대응이나 ‘그린댐(유해 사이트 접속 차단 소프트웨어)’ 의무화 등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공권력 개입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며 중국인과 지도층은 이런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다고 더 확신할지도 모르겠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며 국가의 개입을 줄여 나가던 선진국들이 이번 금융위기로 큰 곤경에 처한 반면 중국의 피해는 예상보다 작았다. 대외 자본거래를 통제해 왔기 때문에 파생거래상품으로 인한 손실이나 핫머니 유출입으로 인한 시장 혼란을 줄일 수 있었다. 이제 중국은 미국 국채의 4분의 1을 사 주는 세계 최대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지난달 하순 중국 출장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2박3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2년 만의 방문이어서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중국은 여전히 소비가 활발했다. 베이징 도심의 ‘신광톈디(新光天地)’라는 고급 쇼핑몰은 명품 구매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우리 돈으로 4000원인 라면을 먹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2015년께 중국이 세계 최대 명품 소비국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중국이 경제위기를 완전히 피해 간 것은 아니다. 수출은 20% 넘게 감소했고 10%대를 넘나들던 경제성장률은 올 1분기에 6.1%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 중에 소비의 성장 기여도가 4.3%에 달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출을 대신해 소비가 성장엔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 준 것이다. 과거 같은 고성장을 재현하긴 어렵겠지만 8% 내외의 성장률을 곧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중요한 시장이 될 것으로 보이는 중국에서 다행히 몇몇 우리 대기업은 위상을 높여 가고 있었다. 특히 LCD·반도체·석유화학 등 중간재 분야는 중국의 전체 수입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컴퓨터나 기계같이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분야도 있었다. 그 결과 올해 초 중국의 전체 수입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12.1%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 엔화 강세로 점유율이 하락한 일본에 비해 선전한 편이지만 미국·서유럽에 비해서는 뒤떨어지는 실적이다.

원화 약세가 중국 수출에 크게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을 감안하면 중국 시장에서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 기업은 프리미엄 전략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일부 대기업에 그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중국에서 우리의 위상을 높여 나가는 게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중국 정부의 압력과 시장 경쟁으로 완제품 생산은 거의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고 부품이나 중간재도 중국으로의 생산 이전을 요구받고 있다. 자동차 엔진과 핵심 부품, LCD 패널, 특수 수지와 같이 우리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고 중국 기업은 아직 생산하지 못하는 하이테크 중간재 등은 당분간 선전하겠지만 일반 범용 제품은 중국에서 발붙이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강력한 사회통제와 산업정책을 통해 성장률을 높여 가며 삶의 질 향상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중국의 성장을 활용하는 것도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기업 역량을 갖출 때나 가능하다. ‘중국 시장에서 어려워지면 한국에 있는 공장은 다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는 현지 진출 기업인의 얘기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문석 박사(경제학)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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