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만난 사람들]3.내가 맛본 북한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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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의 보통사람들은 무얼 먹고 살까. 정말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북한사람들은 모두 궁핍의 절정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일까. 출발 전부터 그 한 가지가 몹시 궁금했었다.

그래서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식탁에 오르는 찬그릇 한 가지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유적답사로 목적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기아선상에 있는 사람들의 현장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종횡무진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북한땅 3천여㎞를 찻길로 쏘다녔지만 남한의 뉴스 화면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곳 주민들이 절망적인 상태로 굶주림을 겪고 있다는 단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스쳤던 모든 정상들을 종합해 유추할 때 국민 대다수, 특히 농촌지방이 식량난을 겪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런 가운데 7월 17일 우리는 점심 때를 맞춰 평양시 대동강가에 자리잡은 냉면집 옥류관을 찾았다.

결과부터 말하면 냉면맛을 판별하는 데는 숙맥인 내가 한 그릇에 5원50전인 옥류관 냉면을 덧거리까지 시켜 먹었다.

그러나 어떤 맛이 나를 그토록 유혹했는지 딱 부러지게 밝혀내기란 어려울 것 같다.

그곳에서 10년째 복무하고 있다는 의례원조차 옥류관 냉면맛을 "구수하고 상쾌하다" 는 정도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것도 기억한다.

그 여성 의례원은 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우리에게 소개했는데, 옥류관 냉면이 가진 맛의 비밀은 독특한 메밀맛이 훼손되지 않도록 껍질을 많이 벗기지 않고 녹말을 전혀 섞지 않은 반죽과 육수에 있다고 한다.

고명으로는 배추김치.양배추.무김치와 닭고기.쇠고기.꿩고기를 사정에 따라 바꾸어 사용하지만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식초를 칠 때는 육수에 치지 말고 고명을 살짝 밀어내고 국수에 직접 뿌려 버무려야 올바른 냉면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모두 3개동으로 나누어진 옥류관은 7백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고, 하루 1만그릇의 냉면을 '봉사' 할 수 있다.

마침 점심시간에 맞춰 옥류관 주변에는 많은 시민들이 활기차게 북적거리고 있었다.

인간이 음식에 관해 갖고 있는 오묘한 지혜와 포부는 그러나 옥류관 냉면에서 발견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백두산 등정을 위해 삼지연의 베개봉려관에 투숙했을 때 나는 음식을 만드는 인간의 슬기와 기량도 열과 정성에 따라 한량없음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양강도에서는 감자 한 가지를 원료로 무려 82가지의 요리를 만들어 왔다는 말을 처음 듣고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백두산감자 (통칭 양강도감자) 는 전통적으로 첫서리를 맞힌 다음에야 밭에서 캐낸다.

그 감자를 '난작' 이라 부른다.

정말 그렇게 다양한 감자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만치 다양하다는 뜻이겠지. 정말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시험해 볼까. 베개봉려관에서 유숙했던 이틀 동안 우리는 주방에서 자랑하는 감자요리를 끼니 때마다 번갈아가며 맛보고 싶다는 요청을 했고, 그 요청은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우리가 먹어 본 감자요리중에 대표적인 감자국수로는 자르기가 거북할 정도로 질긴 녹마국수와 짙은 갈색의 언감자국수, 색깔이 투명한 막가리국수를 들 수 있다.

그 외에 콩가루에 무친 감자찰떡.감자완자.녹마묵.녹마속지짐.언감자떡 맛이 기억에 남았다.

그중의 하나인 녹마속지짐의 요리방법을 소개하면, 먼저 잎이 야들야들한 배추를 살짝 삶아내 물기를 짜내고, 그것을 미리 삶아 다져둔 돼지고기와 버무린 뒤 다시 약한 불에 볶아둔다.

녹마를 끓는 물에 넣어 풀같이 쑨 다음 다져둔 돼지고기와 배추를 섞어 콩기름에 지져낸다.

이런 복잡하고 참을성있는 조리방법을 동원해 반달모양으로 빚어낸 녹마속지짐을 입에 넣었을 때, 아주 매끈하고 차지면서 고소한 맛이 오래 남았다.

감자찰떡은 통감자를 쪄서 껍질을 벗겨낸 다음 일단 식힌다.

그걸 국수틀에 넣어 눌러낸 뒤 떡매로 친다.

그런 다음 콩가루에 묻혀 형태를 만들어 썰어낸다.

이런 모든 요리방법은 전과정이 모두 전통적인 재래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몇 가지 감자요리를 만들기 위해선 많은 인내의 시간과 정성이 투입된다.

주방장인 김복녀 (60) 여사를 비롯한 보조원들은 우리 일행 열두사람의 감자요리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밤을 주방에서 꼬박 지새운 게 틀림없었다.

나는 식사를 하다 말고 주방을 찾아가 김여사를 찾았다.

"잽니까 (저 말입니까) ?" 하더니 여사는 당장 일손을 멈추고 투입구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요리방법을 애성바르게 알려주려고 했었다.

북한에서 자랑하고 있는 특산물들도 적지는 않다.

과일류만 하더라도 북청의 사과, 황주의 포도, 해주의 배, 평양의 약밤과 정주의 왕밤, 통천의 고종감,가곡의 대추, 재령의 복숭아, 룡강의 흰복숭아, 회령의 백살구, 상원 (평양시) 의 단살구, 신천의 단벚, 숙천의 옥류 (추리) , 옹진의 쪽가래를 비롯해 해산물로는 대동강의 숭어, 구장칠의 색송어, 굴포의 참굴, 청진의 조미낙지, 부포의 다시마, 신창의 운단 (젓갈) , 신포의 명란젓, 옹진의 김 등이다.

그러나 금강산 온정리려관에서 체류할 적에 금강원식당에서 식후에 먹었던 복숭아는 내 어린 날의 추억 속에 희미하게 함몰돼 있던 짜릿한 미각을 즉각적이고도 황홀하게 회생시켜 주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 두어 개량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복숭아나무가 북한에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금강원식당에서 내놓았던 송이구이와 가자미국, 신선도가 넘치는 우럭회는 서울의 유명식당 요리솜씨에 결코 뒤지지 않는 독특한 풍미를 지니고 있었다.

알고 보니 식당주인 강련분 (66) 여사는 일본 오사카 (大阪)에서 살다가 북한으로 '귀국' 한 사람이었다.

금강원식당은 전용어선까지 가지고 있어 그 날에 소비되는 송이는 당일 오전 금강산 산록에서 채취하고, 활어는 외금강 앞바다에서 잡아온다는 것이었다.

외금강 어장에서는 광어.전복.해삼.털게.가자미들이 잡힌다고 했다.

경상남도 사투리를 그대로 쓰고 있는 강여사의 고향을 몇 번인가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나는 꾹 눌러 참았다.

'긁어 부스럼' 이란 말이 있듯이 잠자고 있을 여사의 과거를 구태여 긁적거려 거북하게 만들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북한의 먹거리는 어느 한 면에서는 국제적 수준과 비교해 조리방법과 시각적인 면에서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돼 있었지만, 반드시 존재하고 있을 세련돼 있지 못한 다른 측면을 소상하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아쉬움으로 남았던 것은 물론이다.

글 = 김주영 (소설가) 사진 = 김형수 (통일문화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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