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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나는 세대 한자교육 강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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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4월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은 통일부 한 관계자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천출' 발언을 문제삼았다. 통일부 관계자가 금강산에 있는 '천출(天出) 명장 김정일 장군'이란 글귀를 보고 '천출(賤出)은 천민이란 뜻도 있다'고 말해 일어난 일이다. '천 '자를 잘못 해석해 오해를 불러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엔 한 대학의 기초 한자시험에서 신입생들이 낙제점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지금 초.중등생들에게 한자 교육을 확대하느냐를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한글의 우수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한글이 독립적으로 쓰이는 것보다, 한문과 함께 사용될 때 구어적으로나 문어적으로 그 표현이 최고조를 이룬다는 데 있다.

요즈음 한창 언론에 회자되는 '북핵 6자 회담(北核 6者 會談)'을 예로 들어 보자. 이 문장을 우리말에 가장 가깝게 표현해 보면 "또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이 터지면 버섯구름 모양으로 사람을 많이 다치게 하는 것을 만들려 하는데 걱정이 되어 이웃의 여섯 나라 사람들이 모여 나누는 이야기"정도가 될 것이다.

적절치 않은 비유일지도 모르지만 6자로 충분하던 표현이 자그마치 64자로 늘어났다. 마찬가지로 이화여대(梨花女大)를 '배꽃 동산 처녀들의 큰 배움터'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처럼 우리의 말과 글에 한자가 없으면 구어적.문어적 표현이 상당히 까다롭게 된다. 또한 현실적으로 이러한 긴 한글 표현법으로 신문이나 모든 문장을 작성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용어의 70% 이상은 한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마 축약된 한문과 숙어(熟語) 문장이 없다면 우리 신문이나 서적 지면은 현재 분량의 몇 십배를 더 발행해야 하는 낭비와 수고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한글 사랑을 앞세워 한자를 배제하는 풍토는 한글 표현법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다듬어진 한글 보급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2000여년을 써 온 것을 '구식 옷'이라 하여 버리자고 해서는 안 된다.

한자를 배척하기에 앞서 날로 늘어나는 무분별한 국적불명의 신조어를 비롯해 합성어나 난해한 외래어와 같은 언어 파괴의 현상을 더 경계해야 한다.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가 지형학적으로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기록과 표현의 수단에 있어 한문이 배제된다면 서예나 역사의 학문적 연구에 접근할 수 없다. 우리의 정서상 한자에 대한 이질감은 크지 않다. 그만큼 한글과 한자의 병행은 자연스럽게 우리 말과 글의 일부로 발전된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우리의 자라나는 학생들이 한자로 할아버지.할머니, 또는 부모님의 성함은 언제 어디서나 쓸 줄 알아야 한다. 일부 대기업과 활자 매체인 신문사의 신입사원 입사시험 정도에서나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현실은 심히 우려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도 '한문'으로 된 국보이지 않은가. 바뀌거나 새로운 것이 모두 개혁(改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대안 없이 한자 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미래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명식 중앙일보 디지털 국회 논객 (www.joongang.co.kr/assemb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