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IT 전문가, 중기 혁신 조언자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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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보기술(IT)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김모(48·경기도 용인 수지)씨는 요즘 안정적인 직장에서 자신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찾고 있다. 김씨는 대형 시스템 통합(SI) 업체 등에서 20여 년간 일하다 IT 바람이 한창이던 2000년 인터넷 사업을 하는 벤처기업을 세웠다. 처음에는 잘되는 듯했지만 영업부진으로 2007년 끝내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후 아는 사람들을 통해 IT 관련 일감이 들어오면 일을 하는 정도다. 그는 “일이 없을 때도 많고 수입도 적어 생활이 어렵다”며 “20년 넘는 IT 분야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역삼동 전자거래협회 교육장에서 수강생들이 IT 전문가 양성 교육을 받고 있다. [전자거래협회 제공]


지식경제부와 한국전자거래협회는 김씨와 같은 IT 분야 퇴직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대·중소기업 IT상생 협력 체계 구축을 위해 ‘이노베이션 멘토(Innovation Mentor : 혁신 조언자)’를 선발하고 있다. IT 전문가로 중소기업의 IT혁신을 지원하는 사람이다.

전자거래협회의 김신구 상생협력 팀장은 “2002년 63만 명 수준이던 IT 분야 종사자(상시근로자 기준)가 2007년 현재 72만 명 수준”이라며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이들 가운데 5~10%가량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IT 강국으로 꼽히는 한국의 IT 인력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이라며 “대·중소기업 IT 상생 협력에 이들을 투입해 노하우를 활용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기 IT 혁신 이끈다=정부와 전자거래협회는 앞으로 IT 분야에서 퇴직한 전문가들을 이노베이션 멘토로 뽑아 중소기업에 파견할 예정이다. 올해 뽑는 이노베이션 멘토는 지난달 신청을 받아 현재 최종 선발을 남겨 두고 있다. 300여 명이 신청했으며 이 가운데 100여 명을 이노베이션 멘토로 뽑을 예정이다. 이렇게 뽑는 이노베이션 멘토와 별도로 대기업의 IT 전문가와 대학 전임강사 이상의 전문인력 50여 명도 이노베이션 멘토로 활동할 예정이다.

이들은 선발 뒤 일정기간 교육을 거쳐 다음 달부터 중소기업에 파견돼 해당 기업의 IT 혁신을 이끌게 된다. 해당 중소기업은 이들을 비용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정부와 전자거래협회가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의 이선혜 정보통신활용과 사무관은 “이노베이션 멘토 운영에 올해 20억원 이상의 예산을 지원한다”며 “대·중소기업 상생혁신 사업인 만큼 내년에도 선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여 중소기업에 파견=선발된 이노베이션 멘토는 우선 자동차· 조선· 전자 분야의 200여 개 중소기업에 파견될 예정이다. 중소기업에 파견된 이노베이션 멘토는 기업별로 2~3개월 동안 해당 기업의 IT 혁신 업무를 지원한다.

이노베이션 멘토는 기본적으로 월 6회의 기업 현장 파견을 통해 해당 기업 정보화 담당자와 함께 IT 개선 전략을 수립해 진행한다. 이노베이션 멘토는 1~3단계 인력으로 구성된다. 중소기업 현장을 지원하는 1단계 ‘현장지원 멘토’와 20~30여 개 현장지원 멘토의 리더인 ‘2단계 멘토’, 그리고 최고 전문가급인 3단계 멘토다. 3단계 멘토는 대·중소기업 IT 상생협력 전략 수립 전반에 대한 자문에 응한다.

이노베이션 멘토 선발과 교육은 전자거래협회 산하 IT상생혁신지원센터가 담당한다. 혁신지원센터는 이노베이션 멘토 선발·운영에 그치지 않고 중소기업의 IT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운영한다.

염태정 기자

KAIST 김성희 교수
“중소기업 생산성 높이려면 대기업과 IT 분야 협력해야”

“이노베이션 멘토 제도가 중소기업의 정보기술(IT)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킬 것입니다.”

KAIST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의 김성희(60·사진) 교수는 “전문가를 활용해 대·중소기업 간에 IT 상생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세계적인 모범사례”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상급 이노베이션 멘토인 김 교수는 IT 상생 협력 전략 수립에 대한 전반적인 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김 교수는 “현재 공급망관리체계(SCM),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 등을 통해 대·중소기업이 연결돼 있기는 하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특히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IT 분야에서 협력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노베이션 멘토의 자질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조했다. IT 전문가로서 자질과 능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연결하는 것인 만큼 소통 능력이 필수라는 것이다. 그는 “이노베이션 멘토는 중소기업 내 IT 담당자와 협력해 일을 해야 하고 이들을 혁신 인력으로 육성하는 책임도 있는 만큼 대내외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없으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SCM 등 기존 대·중소기업 협력 시스템에 익숙하고, 소통 능력이 뛰어나며, 중소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이노베이션 멘토가 함께 일하고 지도하는 중소기업의 정보화 담당자들을 장기적으로 해당 기업의 최고 정보·혁신 책임자로 육성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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