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가 추천한 명의] 간암 조기진단법 개발에 20년 … 환자 이야기 담은 시집 5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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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꿈 많은 여고생 같은/환자 김웅씨 부인…(중략) …/김웅 선생 학교를 쉬고/자기는 이 장사를 한다고…(중략) /뜨거운 수제비 목에 걸려/ 넘길 수가 없어/나는 수제비 그릇만 바라보았다’(대수리 수제비 중에서) 의대 교수이자 5권의 시집을 출판한 전북대 의대 소화기내과 김대곤 교수가 환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시의 한 대목이다. 보릿고개를 실감하던 시절 남원 소년 김대곤은 12세 때 슈바이처 전기를 읽고 감동을 받는다. ‘의사가 돼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고등학생 때 부모님께 의대 진학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부모님은 “6남매의 장남에겐 ‘사치스러운 꿈’”이라며 질책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의과대학인 전북대 의대에 시험을 쳤고 합격했다. 숙부가 학비는 장학금으로, 숙식은 부잣집 자녀를 가르치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의대생이 된 김대곤 학생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고 결과는 수석 졸업으로 나타났다.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권리가 0순위로 주어진 것이다. 그는 환자를 가장 폭넓게 진찰할 수 있는 내과 전공을 선택했다.

당시에는 간염이 ‘국민병’으로 불릴 정도로 환자가 많았던 시절이다. 실제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는 만성 간염 후유증으로 인한 간암 발생률이 세계 1위였다.

86년 전북대 의대 내과 교수로 발령이 나면서 김 교수는 간 질환을 전공하는 학자의 길을 걸어왔다. 당시만 해도 전 국민 의료보험이 정착되지 않았다. 의료비가 비쌌고, 특히 지방에는 전문의도 귀했다. 개원을 하면 적잖은 부를 축적할 수 있던 시절이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 개원을 해 가족을 호강시켜 보겠다는 생각은 안 했나요?”(기자)

“하하, 제가 아직도 돈의 위대함(?)을 몰라요. 그리고 지금 저는 가족이 편히 머무를 수 있는 내 집에서 끼니 걱정, 자녀 교육 걱정 크게 안 하고 살아요. 이 정도면 부자 아닌가요?”(김 교수)

그는 교수로 재직하면서 간환자를 진료할수록 안타까운 사연은 쌓여갔다고 한다.

“간 질환, 특히 간암 발생 시기는 40대, 50대가 피크예요. 청년 시절부터 죽어라 일해서 이제 조금 기반을 닦을 만하면 간암 선고를 받는 거죠.”

진단법 특허 출원…간암 맞춤치료제 개발 꿈도

전임강사 시절 20년간 간척지를 개발하며 벼농사를 해 온 52세 농부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은 뒤 김 교수의 손을 붙잡고 울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하다. “그 환자 분이 ‘그간 정말 착하게 열심히 살았어요. 지금 죽기엔 너무 억울한 인생이니 꼭 살려 달라’고 애원했어요.”

하지만 간 전체에 암세포가 퍼진 상태였고 결국 치료 한번 제대로 못 받은 채 석 달 후 사망했다.

‘조기 진단만이 살 길이다’.

이후 김 교수는 간암 조기 진단법 개발에 매진해 왔다. 89년 미국 MIT 화이트 헤드 연구소 연수가 계기가 됐다.

“미국에 가서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생소하던 분자생물학 분야의 대가인 한국인 과학자 신희섭 교수의 지도를 받는 행운이 찾아왔어요. 그 이후 줄곧 이 기술을 간암 조기 진단에 적용해 2008년 ‘시스타틴 B(CST)’란 간암 진단법을 개발했습니다.”(김 교수)

이 기법은 기존에 사용되던 알파태아단백질(AFP) 방법을 보완하는 진단법인데 이미 국내에선 특허가 출원됐고 미국·일본·유럽 등에서도 특허 등록을 밟고 있다. 또 김 교수는 현재 MSE2라는 발암 유전자를 통해 간암 맞춤치료제를 개발하는 꿈을 키우고 있다.

간암 치료 교수로 23년간 재직한 김 교수는 나날이 발달하는 간 질환 치료법에 큰 희망을 건다. “병색 짙던 간경변 환자나 간암 환자가 간이식 수술 후 몰라볼 정도로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외래를 방문해 놀란 적도 적지 않습니다.”

그는 “간 건강을 위해선 몸에 좋다는 약이나 민간요법을 남용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제발 전문가를 믿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치료법을 따르세요.” 간질환 명의 김 교수가 건강한 간을 지키기 위한 묘안으로 제시하는 당부의 말이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송호영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지방병원서 끝없는 노력으로 정상 올랐죠”

“지방은 서울보다 연구 여건이 나쁜 게 사실이에요.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 의사의 경우 서울의 초대형 병원은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몰려오잖아요? 짧은 순간에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질병 발현 상황을 경험합니다. 반면 지방은 대학병원이라도 주변 지역의 환자가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을 환자와 연구에 쏟아부어야 해요. 연구 상황은 오히려 더 열악합니다. 연구비만 해도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집중되는 게 현실이죠. 그런데 김대곤 교수는 전주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미국 연수를 통해 익힌 분자생물학 분야를 활용해 결국엔 간암을 조기 발견하는 진단 기법을 개발했어요. 물론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받았고요. 우수한 두뇌와 끊임없는 노력, 단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려 보겠다는 집념이 조화를 이룬 결실이죠.” 송호영(사진) 교수는 김 교수의 연구 업적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연이어 “김 교수는 문학과 미술에 관심을 가져야 환자의 정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환자의 질병을 앓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정서를 표현하는 고귀한 인격체로 보려는 태도죠. 의학계에 몸담고 있는 동료 중 한 사람으로서 김 교수를 가장 존경합니다”며 명의 추천 사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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