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주룽지 총리 '밀수와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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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국 경제의 차르 (황제)' 로 일컬어지는 주룽지 (朱鎔基) 총리가 또다시 개혁의 칼을 뽑았다.

이번 공격의 대상은 밀수. 중국 언론이 일제히 '밀수와의 전쟁' 으로 부를 만큼 살벌한 분위기다.

지난 15일 폐막된 대 (對) 밀수 공작회의에서는 밀수만을 단속하기 위한 전국 규모의 특별경찰대가 발족됐다.

당.정 (黨政) , 심지어 군 (軍) 과도 은밀하게 연계된 밀수조직을 적발하기 위한 장기 포석이다.

16일 중국 일간지에 실린 인민일보 (人民日報) 의 사설은 '밀수 단속이 경제투쟁일 뿐만 아니라 정치투쟁' 이라고 규정지었다.

朱총리의 설명을 빌리면 밀수 단속은 밀수범과 결탁된 당.정.군 및 사법부 내의 부패세력들을 제거하는 의미가 더 강하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밀수 적발로 생기는 이익 가운데 30%를 중앙정부에 귀속시키고 50%는 신고자 포상과 밀수단속 장비 확보에, 나머지 20%는 지방정부의 밀수단속 강화 비용으로 나누겠다고 밝혔다.

중국 국영 중앙방송국 (CCTV) 이 16일 "지난 4일 부산을 떠나 홍콩으로 향하던 한국 국적 유조선 삼양1호가 9일 갑자기 항로를 변경, 푸젠 (福建) 성 사청항에 입항, 중유 밀수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혔으며 중유 4천7백t이 압수되고 한국 선원 14명이 구속됐다" 고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중국이 요즘 밀수 단속에 강력히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시아 금융위기 속에 통화가치를 지키고 있는 위안 (元) 화 덕택에 상대적으로 값싸진 한국.동남아 제품의 밀수량이 날로 늘어나고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 이는 중국 기업, 나아가 중국 경제에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국가 질서에도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90년대 초반 중국을 괴롭힌 밀수품은 총기류였다.

월남전때 월맹군에 지원됐던 중국제 총기류가 범죄집단으로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들어 국제가격과의 시세차익을 노린 설탕 밀수 바람이 불었다.

대대적 단속으로 설탕 밀수는 고개를 숙였지만 지난해부터 중유.식용유 등이, 올들어 정보화 물결에 편승해 각종 컴퓨터 부품과 이동통신 관련 부품들이 주된 품목으로 등장했다.

외제 자동차 밀수도 골칫거리. 19일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의 주말판인 비즈니스 위클리는 '지난 한해 중국에 들어온 외제차는 최소한 10만대로 추산, 공식 세관통계 1만대의 10배에 이른다' 고 보도했다.

규모도 갈수록 대형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개인 차원의 보따리 장사 수준이었지만 요즘은 기업.단체 등 법인 (法人) 이 몰래 들여오다 적발된 건수가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법인 밀수는 방법이 아주 정교한데다 지방정부와 결탁한 경우가 많아 적발도 어렵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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