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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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4장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운다

"공무원들만 잘못된 게 아니죠.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애물단지 노릇 해온 것이 정치라는 것입니다.

정권만 잡았다 하면, 뭔가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을 저질러야 한다는 강박감이란 고질병이 정치인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어요. 누워서 침 뱉기인데도 자기는 얼음알처럼 깨끗하고 자기는 뱅어 뱃속처럼 투명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런 모순과 부당성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단호하게 대항하지 못하는 것은 정권 잡은 사람들의 프리미엄이 너무나 엄청나고 위력적이기 때문입니다.

걸면 걸리는 것은 핸드폰뿐만 아니죠. 우리나라 정치세계에서도 걸면 걸려요. 정치가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걸면 걸리 게 되어 있는 거 아닙니까. 정치인들의 그런 프리미엄을 곁에서 보초 서서 지켜주는 사람들이 바로 고관들 아닙니까. 정치와 분리될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 자기들은 하고 싶어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거예요. 자기들도 남 모를 고통은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

"어쨌든 백성의 나라라고 까발리고 있는데도 백성들이 이렇게 힘이 없는 나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어선 출항통제만 해도 그게 어제 오늘의 얘기여? 그런데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한바다에 나가서 목숨을 걸고 잡아온 꽁치가 열 마리에 이천원이란 것이여. 너무나 억울하지 않어? 소비자들이야 가타부타 말이 있을 수 없겠지만, 어민들인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만보고 있어야 하겠나?" "그럼 네 분이 지금 당장 피켓이라도 들고 부둣가로 나가서 데모라도 하세요. 종일 비만 내리고 있어서 장보러 갈 일도 없던 판에 할 일이 생겨서 좋으시겠네요. "

그렇게 참견하고 나선 것은 이제까지 구린입도 들썩하지 않고 두 사람이 받고 채는 불평만 듣고 있던 승희였다.

차려놓은 밥상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침을 튀기는 두 사람이 언짢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변씨는 승희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되받았다.

"내가 장돌뱅이로 나선 이력은 며칠 안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이라고 공치는 날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비가 오시는 날은 오히려 장 두 개를 본다구. " "두 장을 보다니요? 비가 억수로 퍼붓는데 두 장씩이나 봐요?" "모르면 가만있어. 비오는 날은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어도 구들장을 보고 천장도 보잖어. 그만하면 두 장 보기가 실하지. "

"꿈보다 해몽이네요. " "이렇게 어수선한 아야야시대에는 꿈보다 해몽이 좋아야 살기가 한결 편하지. 하긴 사람 살기 생각 나름이란 말도 없지는 않지만, 고통치 열 마리에 이천원이란 괄시는 아무래도 못 참겠어. 봉환이를 병상에 눕혀놓고 돌아온 지가 몇 시간 안되더라도 도리가 없구만. 소주라도 한 잔 해야 분통이 가라앉을라나…. " 그러나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소주병 마개를 딴 변씨가 맨 먼저 잔을 받으라고 권한 사람은 태호였다.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던 태호가 무릎을 꿇고 잔을 받아들자, 술잔 가녘으로 넘치도록 술을 따라주고 나서 말했다.

"태호.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순리대로 되어야만 사람도 살고 벌레도 살고 짐승도 살 수 있다는 얘기 잘 들었지? 그게 바로 상부상조라는 얘기도 들었을 테고? 한선생의 말을 귀담아 들었을 줄 알지만, 우리가 또 다시 태호의 행방을 찾아 조선팔도를 메주 밟듯이 발섭하고 다니는 불상사는 겪지 않도록 마음가짐 딱 부러지게 다잡아먹어. 동해바다 생선처럼 가슴이 펄펄 뛰는 놈이 그깐 일에 찔끔해서 주눅이 들면, 장차 사내행세는 못하고 사는 게야. 그렇게 알고 쭉 들이켜고 나부터 한 잔 줘. "

그날 밤 자취방에 있었던 세 남자중에 가장 많이 마셨던 사람은 태호였다.

억병으로 취해 옷을 입은 채로 잠이 들어 깨어났을 때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날 새벽이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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