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명암…도쿄 "싫지 않아"·상하이 "죽을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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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일본 도쿄는 1923년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인 39.5도를 기록했다. 21일에도 38도를 훌쩍 넘었다. 밤에도 30도를 웃도는 '초열대야'다.

도쿄에서만 이달 들어 382명이 더위를 먹고 병원에 실려갔다. 당연히 전력 사용이 폭증했다. 그러나 도쿄 전력은 "전력소비가 30% 정도 늘었지만 문제없다"며 느긋한 표정이다. 올해는 모든 원자력 발전소가 완전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안전상의 이유로 원자력 발전소의 상당수가 가동 중단되는 바람에 전력 공급이 달렸다. 전력이 충분하다보니 '폭염 특수'가 절로 살아났다. 에어컨 업체들은 지난 10년을 통틀어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렸다. 전자상가가 밀집한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선 선풍기 재고가 동난 업소도 나타났다.

청량음료 회사들은 24시간 가동체제에 들어갔다. 맥주회사들은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맥주 하루 판매량이 100만병씩 늘어난다"며 함박웃음이다.

자외선 차단제도 지난 여름에 비해 80% 이상 매출이 늘었다. 한벌에 7만엔(약 70만원)이나 하는 '열 차단 양복'은 최고 인기 상품으로 떠올랐다. 다이이치(第一)생명경제연구소는 21일 더위 특수로 국내총생산(GDP)이 0.35%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도 20일 "경기를 생각하면 더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중국 상하이시 와이탄(外灘)은 야경이 압권이다. 황푸(黃浦)강을 끼고 늘어선 고색창연한 건물에 하나둘 불이 켜지면 와이탄은 곧바로 빛의 축제가 된다. 밤이 오면 관광객들이 어김없이 와이탄을 찾는 이유다.

그러나 이달 중순 이후 축제는 중단됐다. 시 정부가 고층건물의 야간조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전력 부족 탓이다. 35도를 넘는 폭염이 열흘 넘게 계속되면서 전력 사용량이 폭증했다. 현재 시 발전소는 발전량을 최대한 끌어올린 상태다. 전력 수요가 더 늘어날 경우 전력 공급 제한이나 중단이 불가피하다.

상하이 기상당국은 "지금 더위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이달 말께면 낮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폭염으로 밤만 되면 상하이시는 거대한 야영장으로 변한다.

27도가 넘는 열대야를 피해 거리로 몰려나온 서민들이 저마다 웃통을 벗어던진 채 육교 위나 공원에서 '집단 노숙'을 하기 때문이다.

시 정부는 전력 절약을 위해 2400여개 주요 기업에 야간 근무를 강제했다. 일부 기업은 아예 휴업 조치했다. 더위에 지친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해 '순환근무'와 '강제휴무' 제도도 도입했다. 기업 생산이 이처럼 위축되다보니 '더위 특수'는커녕 경기 부진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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