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이튿날도 비가 긋지는 않았지만, 산나물 채집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퍼붓지는 않았다.

변씨와 승희를 숙소에 남겨둔 세 사람은 영월에서는 동쪽인 덕포리 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덕포리는 영월읍내와 크게 멀지 않아 산나물을 뜯어둔 농가가 흔치 않았다.

요사이는 옛날처럼 산에만 가면 나물이 지천으로 깔린 것도 아니었다.

나물은 이른 봄부터 햇살이 고즈넉하게 깔리는 야산에서 많이 나는 편인데, 요사이는 산기슭 어디나 수목이 우거져서 나물이 자랄 수 있는 기반여건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덕포리에서 차를 돌려 땍베리 쪽으로 들어갔다.

땍베리에서 계곡길을 타고 조금만 오르면, 사지막이란 뜸마을이 나타난다.

과연 덕포리의 주민이 가르쳐준 대로 덕포리에서 어라연 계곡에 이르는 주변 경치는 숨이 막힐 듯한 절경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영월 동강 (東江) 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어라연에서도 가장 빼어나다는 삼도봉이 물안개 위로 솟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길을 멈추고 넋이 빠져 오묘한 모습으로 겹쳐진 안개 속의 산주름을 바라보았다. 정선읍에서 고성리를 거쳐 백룡동굴을 휘감아 돌고, 다시 어라연을 거쳐 문산 가운리를 거쳐 봉래산 자락을 적셔주고 영월로 흘러드는 강을 동강이라 일컫는데, 이 강의 황새여울에는 지난 날, 이 강 위를 드나들었던 뗏꾼들의 애환도 얽혀 있었다.

정선 아라리의 전설을 안고 흐르는 이 동강에는 놀랍게도 수달이 살고 있고, 어름치와 호사비오리, 열목어같이 맑은 물이 아니면 살 수 없는 희귀 냉수성 어종들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동강 언저리에는 수많은 동굴과 고인돌과 같은 선사유적지가 널려 있어서 말 그대로 자연사박물관으로 일컬어졌다.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은, 남한 최고의 산은 설악이고, 강은 동강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비에 젖은 자갈밭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앞에는 삼도봉의 비경이 발길을 뚝 멈추고 서 있었다.

눈앞의 절경을 바라보노라면, 어쩐 셈인지 가슴부터 답답해오는 것은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숨을 고르던 철규가 태호에게 물었다. "여기에 댐이 들어서면, 응당 저런 비경은 수몰되고 말테지?" "아까운 경치죠?" "개발이라는 단순논리에만 집착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할 귀중한 자연자산을 파괴시키고 수몰시킨다는 생각은 못하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너무 많이 앉아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 노루만 쫓다보면 산을 못 보더라고, 눈앞의 잇속만 탐하는 알량한 패거리들은 우리 같은 난전꾼들뿐인 줄 알았는데…, 공명심에 눈이 먼 고관들의 한건주의 때문에 천만년 내려오는 금수강산이 헐뜯기고 할퀴여 쓰레기가 되어 드러눕게 되는 것쯤은 애써 외면하려는 게지. 그들이라고 동강에 이런 절경이 있다는 것을 모르까. " 그러나 똑같은 비경을 바라보며 감탄을 하고 있어도 속셈은 저마다 같을 수 없었다.

북평과 영월에서 2백 쾌 (한 쾌는 황태 열 마리) 를 헤아리는 황태를 팔아넘긴 잇속의 내막이 사뭇 궁금했던 윤종갑은 길미를 따져볼 때가 되었는데도 동강의 비경만 처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철규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그러나 눈앞의 잇속만 탐하는 게 난전꾼이라고 비아냥거린 철규의 말이 자신을 염두에 둔 말 같아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맞지 말라는 비를 한 시간 이상이나 흠뻑 맞으며 삼도봉이 바라보이는 어라연 어름에서 머물렀던 그들이 일어선 것은 오후 3시 무렵이었다. 그러나 몇 개의 산협마을을 두루 찾아들었으나 산나물 채집은 기대치에 미치지는 못했다.

그동안 뜯어 두었던 나물들을 영월장날에 내다판 것이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데다가, 마을 주변이 울창한 수림으로 들어찬 마을들이어서 산나물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