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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소문난 음식점을 찾아내는 수완을 가진 사람은 행중에서 윤종갑이었다. 장짐을 모두 챙겨 수습한 일행은 그가 먼저 물색해둔 곰치국집으로 찾아들었다.

장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장옥 (場屋)에 본래는 삼척의 명물로 이름난 곰치국집이 새로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예로부터 동해안 지역 어민들은 이 곰치국으로 술 마신 뒤의 쓰린 속을 달래왔는데, 몇몇 집안에서만 은밀하게 전승되던 곰치국이 90년대 들어서면서 식당의 메뉴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식당 앞에는 두 개의 자배기에 받아둔 곰치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곰치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누군지는 몰라도 이름 한 번 기막히게 지어놓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 흐물거리는 몸뚱이나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어 있는 머리에 유난히 작은 눈은 미련하고 염치없음의 표상처럼 보여서 곰치라는 이름이 걸맞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생선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했던 삼척 사람들은 그래서 이 곰치를 물곰이라고 에둘러 불렀다.

도회지 사람들이 날것으로 있을 때의 곰치를 보면 십중팔구 혐오감을 느끼지만, 일단 끓여낸 곰치국의 맛을 보고나면, 반드시 다시 찾게 되는 음식이었다.

곰치국 맛의 실상은 그러나 곰치에 있는 것이 아니고 김치에 있었다. 지난해에 담은 묵은 김치를 숭숭 썰어넣고 끓이면, 곰치와 어울려 얼큰하고 개운한 맛을 자아낸다.

게걸스럽게 허기진 배를 달랜 행중은 그제서야 하나 둘 벽을 기대고 앉아 담배 한 개비씩을 입에 물었다.

하루 종일 입안에 흙내가 흠뻑 배도록 마셨던 먼지가 싹 가신 듯 개운했다. 그러나 윤씨는 담배도 태우지 않고 태호의 거동에 자주 눈길을 주었다.

그날 하룻동안 장터에서 거둬들인 돈주머니를 태호가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날의 잇속을 따져보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도 다른 일행들은 무덤덤하게 앉아 담배만 죽이고 있는 거동이 윤씨에겐 못마땅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회계를 따져보자고 중뿔나게 나섰다간 걸찍한 변씨의 욕설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속만 태우고 있었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냉큼 일어서지 못하는 까닭은 있었다.

북평장과 진부장날은 같은 날짜에 열리는 장시였다.

야간운전에 능숙한 봉환이가 처음부터 합류를 했었더라면, 행중은 두 패로 나뉘어 두 곳의 장시에서 좌판을 벌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봉환이가 함께 떠날 수 없었으므로 용달트럭 한 대에 세 사람만 북평장으로 몰려온 것인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변씨와 승희가 느닷없이 합류한 것이었다. 내일은 그들로서는 놓쳐서는 안될 영월장이었다.

내일 아침 영월장에 때맞추어 당도하자면, 당장 채비하고 떠나서 한밤중이라도 정선까지는 길을 줄여놓아야 안심할 수 있는 노정이었다. 정선까지는 이수로 따져 2백리가 넘는 길이었다.

그러나 고심하던 철규는 한참만에 결심한 듯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변씨의 말처럼, 봉환이가 북평댁을 가게에서 몰아낼 때까지 승희를 당장 주문진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행중 모두가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엔 없었다. 운전석에 세 사람이 타고 덮개를 씌운 적재함에는 철규와 변씨가 올랐다.

운전석은 태호 차지였고, 조수석에 승희와 나란히 앉게 된 윤씨는 실속도 없이 해죽거렸다. 출발한 지 십분도 지나지 않아서 변씨는 장짐에 기대어 코를 곯았다.

틈이 벌어진 덮개 사이로 희끗희끗 밤기운이 스치고 있었다. 묵호댁이 가게에 나타나는 불상사만 없었더라면, 철규는 지금 봉환이와 짝이 되어 진부에 머물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 계획이 틀어져 진부장을 놓친 것이 애틋한 미련으로 가슴에 남았다.

진부장에서 횡재를 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여자 때문이었다. 십중팔구 그녀를 또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릴 수 없었다.

그 여자에게 끌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가당찮은 허영이었다. 그러나 분수를 차려야 한다는 이성적인 판별력은 가지고 있는데도, 장텃거리의 커피맛에 매료되었다던 여자가 뇌리에서 떠난 적은 없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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