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綜金맨'이 억대연봉자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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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증권가에 나타난 '공포의 외인구단' - . 동아증권 VIP 금융상품팀을 증권가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이병배 (李炳培.38).서경민 (36).김영길 (34).배정삼 (34).이성문 (33).김신욱 (32).김광남 (32.여).김효정 (32.여) 씨 등 8명. 이들은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직장을 잃고 실의에 빠져있던 실업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일어섰고 한달에 수조원대의 기업어음 (CP) 을 거래하는 '무서운 아이들' 로 갑자기 증권가에 나타났다.

지난 1월30일 폐쇄조치된 신한종금 동료였던 이들이 동아증권의 '외인구단' 이 된 것은 신한종금 증권신탁부 과장이던 李씨의 아이디어 덕분. 실업직후 대책에 골몰하던 李씨는 상당수의 종금사들이 폐쇄돼 이곳에서 주로 취급하던 CP거래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데 착안했다.

李씨는 별동팀을 구성하면 이 업무로 증권사에서 승부를 걸 수 있다고 판단, 즉시 팀구성에 나섰다.

평소 눈여겨보았던 여신.자금.기획.개인고객영업 분야 베테랑들인 동료과장 3명.대리 2명.여직원 2명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팀을 세일즈할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계획서에는 CP업무로 연간 30억원이상의 수익을 올리겠다는 것과 팀이 올린 이익의 일정 부분을 성과급으로 받는 대신 영업이 부진할 경우 이듬해 자동해고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팀원들은 계획서를 들고 30여개 증권사 대표들을 찾아나섰다. 3~4개 회사와는 계약단계에서 기존 조직의 반발로 무산됐다. 일부 회사는 팀원중 몇명만 채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거부했다.

'불면의 밤' 을 보낸지 60여일. 동아증권이 이들을 택했고 지난달 6일 외인구단은 '1년계약직' 으로 동아증권 5층에 둥지를 틀었다.

전직장 연봉의 40%선인 기본급만 받고 연간 30억원이상의 이익을 올릴 경우 20%를 성과급으로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팀원들은 신한종금 재직때 확보한 은행.투자신탁회사 등 고객들을 다시 접촉하며 밤늦도록 뛰었고 최근까지 한달여만에 2조4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순이익만 7억5천만원. 증권업계가 놀랐다. 외인구단의 활약으로 동아증권의 CP판매 순위도 업계 10위에서 3, 4위권으로 껑충 뛰었다.

"이 추세라면 약속했던 목표의 2배가 넘는 60억원 순이익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팀원들은 더불어 계약조건에 따라 전직장의 2배가 넘는 억대의 연봉을 받을 꿈에 부풀어 있다.

실직의 좌절을 걷어낸 그들의 표정엔 '자신감' 과 '패기' 가 꿈틀대고 있었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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