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노숙자에 급식 베들레헴의 집 '밥짓는 수사' 신베드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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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요즘 도심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노숙자들의 흐트러진 모습은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의 상징이 돼가고 있다.

갑작스런 실직이나 사업 파산 이후 가족들과의 갈등과 생활고 등을 이유로 가정을 떠난 이들의 심리상태는 허탈하고 복잡하다.

깊은 상처를 안고 있지만 자포자기 상태의 부랑인이나 취업 자체를 거부하는 서구의 홈리스 (Homeless) 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끝없는 절망감으로 가슴을 치는 이들에게 따뜻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

프란치스꼬수도회 신석기 (申錫起.52.베드로) 수사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명이다.

그가 3년째 노숙자.부랑인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는 급식소인 서울용산구신계동 베들레헴의 집을 찾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 를 청했다.

만난사람=이하경

- 요즘 이 곳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지요.

"그렇습니다. 지난해초에는 1백50명 정도였는데 연말부터 급작스럽게 수가 불어났어요. 현재는 3백50명 정도 되지요. 새로 온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을 잃은 노숙자 같습니다. 넥타이를 맨 채로 오는 분들도 하루에 5~6명씩 됩니다. 어떤 분들은 휴대폰까지 들고 와요. 그래서 '정말로 어렵지 않으면 진짜로 힘든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해 주십시오' 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집에서는 답답해서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나왔는데 돈 될 일은 없고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니 어떻게 합니까' 라고 하소연하더군요. 한달에 40만~50만원씩 받고 영세공장에 다니는 저소득층들도 점심값을 아끼느라고 이 곳을 찾고 있습니다. 중국동포들도 빼놓을 수 없는 형제들이지요. "

- 이 곳에서 숙식을 동시에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여기는 급식을 위한 집이지만 오갈 데 없는 11명에게는 잠자리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들중 5명은 실직자고 2명은 척추장애자, 3명은 환자입니다.

지능이 좀 낮아 설거지를 도와주면서 기거하는 노인도 한분 있고요. 저를 포함한 수사 3명을 합치면 14명이 한 식구인 셈이지요. "

- 집이 낡고 누추한데 불편하지 않습니까.

"이 곳은 제가 있겠다고 자원한 곳입니다. 제겐 이 세상 어디보다도 편안한 공간입니다. 어려운 시대에 고통받는 형제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이 곳이 바로 진정한 수도원이라고 생각합니다."

- 힘든 순간이 많았을 텐데요.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술에 취한 여자 행려자로부터 태어나서 가장 심한 욕설을 듣고 기가 막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어요. 그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사와 존경을 받고 싶어 이 일을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울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반문했지요. 많은 반성을 했고 '주는 걸로 끝내자' 고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홀가분해지더군요. "

- 운영비가 간단치 않을 텐데 어떻게 조달하고 있습니까.

"이럭저럭 한 달에 1천만원 정도가 들어갑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조금씩 내놓고 가고 독지가들도 도와주고 있습니다. 저와 수사님 한 분이 대학 강의와 강연료로 받는 월 2백만원 정도의 수입도 식비로 들어갑니다. 요즘에는 형제들이 넘쳐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얼마전에는 분당의 토지공사에서 오징어무침.쇠고기 등 반찬거리가 있다고 연락이 와서 가져다 나눠 먹었지요. 아직은 괜찮습니다."

- 힘든 일을 하다보면 자세가 흐트러질 수도 있을 텐데요.

"저희는 찾아오는 모든 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식하는 일은 자원봉사자에게 맡기지 않고 수사들이 직접 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맛있게 드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라는 인사말도 반드시 합니다."

- 언제가 가장 보람이 있습니까.

"제 손을 꼭 잡고 '다른 곳에서 받아보지 못한 인격적인 대우를 해줘 감사하다' 며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이 많아요. 없는 형편에도 과일을 사가지고 온다든가, 용돈으로 쓰라고 만원짜리 지폐를 꼭 쥐어주는 분들도 있어요. "

- 그분들과 대화는 많이 나눕니까.

"가족에게도 할 수 없었던 얘기를 우리에게는 털어놔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많이 들어주는 일밖에 없지만…. 그래도 마음의 위로가 된다고들 합니다."

- 요즈음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입니까.

"샤워시설을 하나 만들어 형제들에게 마음껏 목욕이나 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이 집이 무허가 주택인데다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 이웃 주민들이 대하는 눈길은 어떤가요.

"한마디로 냉담하고 무관심해요. 주민 대표자가 찾아와 다른 곳으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하고 용산구청에 민원을 제기한 일도 있어요. 그분들의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자주 쉬러가는 소공원에서 술을 마시고 웃통을 벗는 부랑인들에게 자제를 요구한 적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난이 어디 개인의 탓만인가요.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도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될 텐데…. "

- 그분들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각별하겠지요.

"저희는 동정심에서 이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가진 자의 시각에서 가난한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평등한 인간, 대등한 인격체로 대하고 사랑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난사람 =이하경 사회부차장

*申수사 누구인가

申수사는 지금은 강릉시로 편입된 강원도 명주군주 문진읍에서 태어나 춘천교대를 졸업하고 3년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26세 때인 72년 프란치스꼬 수도회에 입회했다.

수사가 된 이후 가톨릭대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필리핀 마닐라의 드 라살대학에서 상담심리학 (84년) , 미국 뉴욕의 성 보나벤투라대학 (93년)에서 수도생활 신학을 전공해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다.

3년간의 정동수도원장직을 끝낸 96년 2월 베들레헴의 집 근무를 자원했다.

수도회내에서 교육전문가로 통하는 그는 바쁜 생활 속에서 주 5일씩 수도자신학교와 수도원.수녀원에서 강의도 한다.

사진 =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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