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제 창고형 매장 열겠다 … PL 고급화로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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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정용진(41·사진) 신세계 부회장은 26일 “도매형 매장 진출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세계PL(유통업체 브랜드)박람회 참석차 네덜란드와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월마트나 까르푸 같은 세계적인 유통업체는 네다섯 개의 업태가 있는데 이마트는 하나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소형 포장 제품을 파는 이마트와 달리 ‘코스트코홀세일’처럼 회원제 창고형 매장을 열겠다는 것. 그는 “기존 이마트 중 수익을 못 내는 점포를 도매형 점포로 바꿀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간담회 전 그는 독일의 회원제 할인매장 메트로에 다녀왔다.

정 부회장은 또 이마트 PL 상품 개편 계획도 소개했다. 그는 “8, 9월께 PL을 싹 바꿀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싼 상품이 주였지만 제조업체 브랜드보다 품질이 좋고 더 비쌀 수도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이마트에서만 파는 고급 제품으로 단골을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수퍼마켓 진출에 대한 중소업자의 반발과 관련해선 “기업형 유통의 입점을 반대하기보다 배달 등 소비자에게 주는 혜택을 늘려 살아남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낫다”며 “올해 소형 점포 30곳을 열겠다”고 말했다. 대신 공생을 위해 장기적으로 소형 점포의 프랜차이즈화를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그룹의 밑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날 간담회는 지난해 말 부회장 승진 이후 첫 단독 자리다.

간담회에 늘 함께하던 전문경영인 구학서 부회장은 불참했다. 구 부회장으로부터 14년째 경영수업을 받아오다 차츰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는 “신세계의 강점은 선대 회장부터 이어온 맨파워”라며 “전문경영체제에 대한 신념은 확고하다”고 못박았다. 그는 그러면서 “구 부회장이 ‘직접 한번 나서서 대외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이번 해외 간담회를)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나의 역할과 전문경영인이 할 일은 다르다”며 “나는 대주주로서 신세계의 미래 비전을 찾고 10년, 20년 뒤 그룹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에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 같은 방침은 어머니 이명희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1995년 입사한 그에게 이 회장은 ‘아무 소리 말고 배우라’고 했다고 한다. 정 부회장은 “처음엔 배우기만 했고,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이마트가 급성장하자 해외 성공사례를 찾아 나섰다”고 소개했다. 그는 98년 6개월간 일본을 오가며 대형마트 이토요카도와 이온의 전문가들로부터 ‘개인 레슨’을 받았다.

그의 일본행 이후 매장 천장까지 상품을 쌓아놓던 이마트는 고객이 상품을 보고 고를 수 있도록 진열 방식을 바꿨다. 한국처럼 반찬거리 장보기가 빈번한 일본을 보고 신선식품을 강화하자는 의견도 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PL이 발전의 열쇠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PL 제품을 써보고 “매장에서 팔리는 즉석 조리 상품의 맛이 업체 선정 때와 다르던데 어떻게 된 거냐” “개를 키워보지 않고 애완견용 제품을 개발해선 안 된다”는 등의 반응을 직원들에게 전한다.

그는 간담회 때도 “경영인과 직원 모두가 소비자를 중심에 놓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뒤셀도르프=김성탁 기자

◆PL(Private Label)=제조업체가 생산한 제품에 다른 기업의 상표를 붙인 제품. 보통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와 계약하고 만든다. 유통 구조가 단순해져 가격이 저렴하다. PB상품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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