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가 추천한 명의] 박철 고려대 의대 성형외과 교수→배상철 한양대 류머티스 병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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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1박2일, 아니 1박3일 영국 출장을 떠납니다. 귀국하는 날 저녁 때 병원에 가서 입원 환자 회진을 돌려고 해요. 그때 만날까요?” 한양대 류머티스 병원장인 배상철 교수와 인터뷰 날짜는 이렇게 정해졌다. 병원에서 임상 의사로서의 환자 진료, 학자의 의무인 학회 활동, 병원장으로서 행정적인 업무까지 봐야 하는 배 교수의 1년 365일은 그의 심장 박동과 더불어 쉴 틈 없이 돌아간다. 하지만 환자 진료는 언제나 배 교수의 머릿속에서 ‘0순위’로 자리 잡고 있다.

‘환자 없는 임상 의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에 “하루라도 환자 얼굴을 안 보면 마음이 안 놓인다”는 배상철 교수. 그래서 그는 꼭 참석해야 하는 국제학회도 소규모로 진행될 땐 1박2일, 1박3일 하는 식으로 회의에만 참석한 뒤 곧 비행기를 타고 병실로 달려온다.

배 교수의 장래 희망은 어릴 때부터 의사였다. “초등학생이 되면 위인전도 보고 소설도 보면서 꿈을 키우잖아요? 그러다 존경받는 어른들에게서 ‘남을 돕는 삶을 산다’는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직업 자체가 남을 돕는 일을 찾다가 의사란 직업을 찾았어요. 열 살 무렵, ‘나를 찾아오는 환자는 누구라도 열심히 치료해 주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하자 마음이 뿌듯해졌어요. 이후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황무지’ 류머티스 분야에 지원

배상철 어린이의 1단계 꿈은 1984년 한양대 의대 졸업과 더불어 의사면허를 취득하면서 이루어졌다. 졸업 후 내과의사의 길을 걸으면서 처음엔 심장병을 전공하고자 마음먹었다. 맥박이 불규칙해 죽음의 공포를 느끼던 환자가 인공심장박동기를 장착한 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다. 하지만 “심장병은 서양에 많은 병이라 많이 발전한 학문이다. 반면 류머티스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은 분야고, 똑 부러지는 치료법도 없어 고생하는 환자가 너무 많다. 미개척 분야에 뛰어들어 일해보지 않겠느냐”란 선배의 권유를 받아들여 류머티스 전문의가 됐다. 실제 배 교수는 국내 류머티스 분과 전문의 면허번호 12번인데 현재도 이 분야 전공자는 200여 명에 불과하다.

막상 류머티스 전문의가 되고 보니 미제의 연구 과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류머티스 분야의 현실을 절감한 배 교수는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96년 도미해 하버드의대 교환교수로 근무하면서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임상연구 방법론의 대가인 리앵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귀국 후 시작한 첫 번째 작업은 류머티스 환자의 진료와 연구를 연결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이다. 98년 시작된 DB 만들기를 토대로 환자의 데이터가 컴퓨터에 집대성되면서 연구 실적도 좋아졌다.

실제 이를 토대로 그는 현재까지 국제적 수준인 SCI 논문만 130여 편을 발표했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신치료법을 적용하는 일을 ‘실험적 치료’라는 식으로 폄하하는 일은 너무 비관적인 견해예요.” 이렇듯 배 교수는 미개척 분야의 치료에 대해선 공격적인 치료만이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10여 년간 DB 축적, 연구 실적 좋아져

실제 그는 2002년, 경피증 환자에게 국내 최초로 ‘조혈모 세포이식’을 시도해 성공했다. 경피증은 혈관 주위가 딱딱해지다가 결국 피부와 내장의 결합조직까지 굳어지는 병인데 처음엔 몸을 못 움직이지만 나중에는 폐도 딱딱해져 숨쉬기조차 힘들어진다.

3~4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조혈모세포이식의 첫 단계는 환자에게 항암 치료를 해 백혈구의 면역세포를 모두 죽이는 일이다. 당연히 정상세포도 파괴되게 마련인데 한동안 환자는 무균실에서 관리를 받아야 한다. 이후 조혈 생성 인자를 환자에게 주사해 환자의 골수에서 정상에 가까운 면역세포가 만들어지면 이를 혈액에서 추출해 냉동 보관을 하는 게 다음 단계다. 이 과정을 끝낸 환자는 한 달간 휴식을 취하면서 전신 상태가 좋아지길 기다려야 한다. 상태가 호전된 환자는 냉동 보관했던 물질을 주입받게 된다.

루프스로 신장이 파괴되고 배가 남산만큼 부른 상태에서 배 교수를 찾았던 한양대 신입생도, 심장과 폐에까지 루프스가 진행돼 시한부 인생을 살던 22세 미혼 여성도 모두 이 치료를 받고 지금은 정상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특히 얼마 전 치료 당시 22세이던 환자가 28세에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너무 기뻐 눈물까지 나왔다고 한다.

“훌륭한 연구와 치료 결과는 꾸준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신념을 가진 명의 배상철 교수. 그는 병원장이 된 지금도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강정현 기자



박철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지칠 줄 모르는 임상연구, 국제무대서 알아주죠”

“좀 더 낳은 치료법을 적용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연구해야 합니다. 흔히 ‘연구’하면 실험실에서 약물이나 시약을 사용해, 혹은 쥐를 사용한 동물 실험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임상의사는, 특히 내과 의사는 환자를 진료한 결과 통계 자료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임상 연구를 할 수 있어요. 배상철 교수는 이런 새로운 임상연구법을 미국에서 배워 국내에 적용시킨 분입니다. 국제적인 유명 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게재하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죠. 지금은 국내 의료 수준이 아무리 높다 해도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배 교수는 한국 의료계에 큰 역할을 한 분이에요. “고대 성형외과 박철(사진) 교수가 배상철 교수를 명의로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다.

“나는 개인적으로 배 교수를 몰라요, 만난 적도 없고요. 하지만 의대 교수로 있다 보니 배 교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하도 성실하고 준비성이 철저해 주변에서 의사들이 붙여 준 별명이 ‘준비 배’라고 하더라고요.

환자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한겨울에도 출근시간이 7시를 넘긴 적이 없다고 하잖아요? 이 정도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해 열심히 환자를 보다 보면, 그것도 20년 이상 대학병원에 근무하면서. 어떻게 명의가 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배 교수를 명의로 추천한 박 교수의 확신에 찬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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