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으로 돋보이고 싶은 심리는 이상한 진화의 부산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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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와 같은 명문 대학에서 학위를 따려고 돈을 더 많이 들이는 이유는 무얼까. 같은 자동차 가속페달을 쓰는 스바루 WRX보다 BMW가 2만5000달러나 더 비싼 이유는 무얼까. 공작의 화려한 깃털이 시선을 집중시키듯, 명문대 학위나 명품 차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여기기 쉽다. 때문에 시장조사 전문가와 광고회사 관계자들은 "소비자가 물건을 살 때 내리는 이성적 결정과 감성적 결정에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정말 당신이 어떤 물건을 사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뉴욕타임스(NYT)는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 뉴멕시코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그런 생각은 자기 도취의 환상일 뿐"이라고 19일 보도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는 배우자나 가장 친한 친구가 며칠 전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브랜드에 가장 집착하는 소비자가 청소년이라는 사실은 명품 소비의 허상을 보여준다.

밀러 교수는 사람들이 칵테일 파티나 공항 라운지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의 비싼 시계와 디자이너 선글라스에 잠시 눈길을 줄 수 있고, 어떤 차를 선호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취향과 성격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도 설명한다. 그렇지만 배우자나 친구 등의 인간 관계에서는 명품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데이트나 대화 중에 드러나는 지식과 인격을 통해 상대의 진면목을 파악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과거 소규모 사회에서는 낯선 사람이 잠재적인 배우자이거나 친구 등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짧은 순간 상대에게 어필해야 했다"며 "명품을 소비해 돋보이고 싶다는 심리는 과거 친밀한 사회에서 기인한 이상한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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