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화제]임승빈 시집 '하늘뜨락'…정신지체아 삶의 아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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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여기서는 그늘도 그늘 같지 않고/저미는 아픔도 아픔 같지 않고/넘치는 설움도 더는 설움 일 수가 없어서/모두가 하나처럼 어울려 산다."

( '우리들의 집' 일부) "바람이 여기 와서는 더욱 맑아진다//…//다섯 살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마흔 살 쉰 살 예순 살짜리 아이가 모두 함께 산다/함께 웃는다.”

( '바람이 여기 와서는' 일부) 시인 임승빈 (청주대 교수.국문학.사진) 씨의 '하늘뜨락' 은 책 전체를 정신지체아들에게 바친 독특한 시집이다 (문학세계사刊) .신체 장애인을 다룬, 또 그들이 발표한 시집은 전에도 여러 번 나왔지만 일상적 사고조차 불가능한 정신지체아를 다룬 시집은 이번이 처음. 모두 55편의 연작시를 통해 정신적 결함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감동 깊게 읊었다.

소재는 정서 장애아 특수 교육기관인 청주 성신학교. 시인은 이 곳 아이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선생님과 수녀님들의 사랑을 따뜻한 시정 (詩情) 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인의 딸도 선천성 정신지체아로 이 학교 중등부에 재학 중이다.

특이한 점은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여느 시와 달리 직설적.산문적으로 아이들의 말 못할 심정을 단순 명료하게 그리고 있다는 것. 시의 정통적 기법조차 참담함을 바라보는 시인에겐 사치스런 일이었는지 모른다.

“눈만 뜨면 지체아 자식을 버리고 그 죄책감 때문에 우는 어머니와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아이” ( '어머니' ) , “출석을 부를 때 한 번도 대답 않던 영욱이의 '네' 하는 소리에 트인 말문이 막힐까봐 기쁨의 눈물을 감추려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흘리시는 선생님” ( '영욱이' ) 등 갖은 애환이 투명하게 펼쳐진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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