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당선자·30대그룹 총수 오찬회동 대화록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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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원석 (崔元碩) 동아회장 = 고용인원 2백만명선인 건설업계는 경제발전의 중추산업이다.

지금 엄청난 고금리로 자금압박이 심해 각종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놓여 있다.

정책자금지원으로 대량부도와 실업사태를 막아야 한다.

▶林부총리 = 건설업이 위축됐다가 경기가 정상화되면 오히려 공급애로사태를 낳을 수도 있어 그 점을 유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IMF로부터 긴축재정을 강력히 요구받고 있다.

또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김병진 (金炳珍) 대림회장 = 해외건설에 특히 애로사항이 많다.

외국의 발주자본은 우리 기업에 본드를 요구하고 있다.

수주하고도 이 문제에 걸려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林부총리 = 법적으로 정부가 보증할 수는 있게 돼있다.

그러나 국내 건설사들이 과잉경쟁을 하면서 손해나는 수주를 하는 일도 적지 않다.

뻔히 손해보는 장사임을 알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어떻게 보증을 다 해주겠는가.

검토는 할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계도 과당경쟁의 문제를 풀어주기 바란다.

▶이수영 (李秀永) 동양화학 회장 = 김용환 (金龍煥) 부총재에게 묻겠다.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산매각에 양도세 감면 등 세제혜택을 주겠다고 하는데, 관련법이 통과되면 그때부터 효력을 발휘하는 것인가.

올 1월1일부터로 소급적용해줄 수 없겠는가. 기업으로선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金부총재는 '이 부분 전문가는 장재식 비대위원이라며 마이크를 張의원에게 넘김)

▶장재식 의원 = 원칙적으로 기업구조조정 법안들이 통과되면 그 시점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사안으로 문제제기를 했으니 검토해 보겠다.

▶김용환 부총재 = 다음주 월요일쯤 그룹의 기조실장이나 관련 임원들을 초치해 구체적인 이행절차와 스케줄 등을 협의할텐데 그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백영기 (白永基) 동국무역 회장 = 노사정에서 노조전임에 대한 무임금 규정은 어떻게 처리됐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미국.일본.호주 등 확고한 국제관행이다.

그들 나라는 무노동 무임금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법은 노조전임에 기업이 임금을 지급하면 2년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을 물게 돼있는데 이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한광옥 노사정위원장 = 기업의 여러가지 어려움 잘 알고 있다.

金당선자께서도 노사정의 균형있는 고통분담을 말씀하셨다.

그 조항을 그대로 두도록 하겠다.

▶김승연 (金昇淵) 한화회장 = IMF고금리로 기업들이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林부총리 = IMF와 금리협상을 할 때 우리 정부는 그런 고금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막판까지 버텼다.

그러나 그쪽은 전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잠정적' 이라는 토를 달아 고금리를 인정했던 것이다.

지금 진행중인 IMF협상단과의 수정협의에서 고금리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그들도 우리 중소기업.대기업들을 두루 조사하면서 우리 문제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출산업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17일 있을 IMF이사회에선 '외환사정이 좋아지는 것' 을 전제로 '한국의 고금리는 점진적으로 인하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는 문안이 안건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환율이 안정되지 않으면 고금리도 해결되지 않으니 만큼 안심할 순 없다.

제일 어려운 시기가 1분기다.

▶최종현 SK회장 = (큰 소리로) 林부총리한테 하나 물어 봅시다.

지금 한국은행이 통화안정증권을 얼마나 갖고 있지요?

(林부총리가 낮은 목소리로 수치를 제시하자) 아, 잘 안들려요. 얼마라구요?

통안증권은 지난 86년 우리가 처음 흑자가 날 때 원화관리를 위해 정부가 시중에 강제적으로 발행해 가뭄에 물 빨아가듯 쏙쏙 돈을 빼간 것이다.

우리 재계에서 25조원이나 거둬갔는데 이제 적자가 됐으니 다시 돌려 달라. 이건 IMF와 관계없는 사안이다.

이제 내놓아요. (팽팽한 긴장속에 이 대목에서 웃음) 林부총리 책임은 아니지만 재정경제원이 완고하니 안되겠다.

나도 그때 논쟁을 벌였다.

▶林부총리 = IMF의 핵심이 긴축재정이다.

그들은 우리정부 보다 더 정확하게 통화.환율사정을 체크하고 있다.

▶崔회장 = 재계가 지금 상호지급보증금지로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IMF와 관계없이 우리한테 가져간 돈 되돌려 달라는 것이다.

▶林부총리 = (상기된 표정으로) 분명히 말하지만 IMF가 그런 구별을 해주나. 나중에 대책을 마련하겠다.

▶장상태 (張相泰) 동국제강 회장 = 일본 NHK방송은 최근 IMF 고위 간부와 대담을 했는데, 그들도 "IMF가 변해야 한다" 고 인정했다.

몇십년 된 규정을 갖고 요새 상황을 재단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도 있으니 그들과 협상할 때 좀 잘해주기 바란다.

▶林부총리 = IMF만 있는 게 아니라 세계은행도 있다.

그들 모두 초긴축.고금리를 요구하고 있다.

▶김주진 (金柱津) 아남회장 = 나는 올해 30대그룹이 돼 영광스럽게 이 자리에 왔는데, 더 부담이 많다.

다른 그룹들은 상호지급보증 해소 등에 대해 3년전부터 정부요구에 따라 준비해왔지만 우린 그렇지 못하다.

(지급보증해소 기간을) 2~3년 정도 유예해달라.

▶김용환 부총재 = 이해는 하고 나중에 실무적으로 얘기를 듣겠지만 개별적으로 그러긴 좀 어려운 것 아닌가.

▶장치혁 (張致赫) 고합회장 = 기업이 죽기 살기로 뛰겠다.

당선자께서도 격려해 주셔서 고맙다.

▶김승연 한화회장 = 한화에너지의 기업매각을 비밀리에 추진하다 언론에 기사가 나가면서 죽을 고생을 했다.

종금사 등이 찾아와 모기피 빨아먹듯 다 가져가 매각대금이 하루만에 다 날아갔다.

금융기관이 금방 들이닥치고 외상은 안되고 현금으로만 결제하겠다는 등 어려움이 여간 심한 게 아니다.

이래갖곤 외국인에게 팔 때 제값을 받을 수 없다.

법.제도로 어떻게 할 문제는 아니나 이런 사정을 꼭 좀 고려해달라.

▶金당선자 =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돼 기분이 좋다.

특히 최원석 회장이 불경기일수록 건설을 일으켜야 한다는 말에 동감이다.

그리고 崔회장께서 통화안정증권 문제를 말씀해 주셨는데 대단히 옳은 지적같다.

사실 난 잘 몰랐다.

앞으로 잘 상의해보자. (김용환 부총재가 '기업체질 개선과 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합의문' 을 읽고 박수로 통과시킨 뒤 끝남)

전영기·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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