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울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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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46년 전 일이다. 당신은 약하게 태어났다. 한겨울이었다. 태어나 줄곧 당신은 아팠다.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았지만 낫지 않았다. 겨우내 당신은 아팠고 그렇게 시름시름 봄이 왔다. 당신은 금방 죽을 것 같았다. 갈수록 숨이 가늘어졌다. 봄이 한창인 바깥은 환했지만 방 안은 어두웠다. 당신의 숨소리가 끊어진다. 당신 아버지가 당신의 코에 손가락을 대 보더니 당신을 윗목으로 밀어낸다. 당신은 불효자식이니까. 부모 가슴에 묻어야 할 자식이니까. 당신의 가족이 모두 운다. 가장 나중까지 우는 사람은 당신 어머니다. 어머니마저 울음을 그치자 방 안에는 고요가 가득하다.

누군가 방문을 연다. 봄볕이 꽃 향기와 함께 와락 들어온다. 꽃향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당신 얼굴을 간질이던 햇살 때문이었을까. 당신은 무엇에 놀라기라도 한 듯 울음을 터뜨린다. 울고 있는 당신에게로 가족이 몰려든다. 당신은 그렇게 울고 있는데 당신 가족은 모두 웃는다. 그 웃음소리에 놀라 당신은 더 크게 운다. 당신은 악을 쓰며 운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울고 있는 당신을 따라 당신 어머니도 운다.

46분 전 일이다. 당신은 잠에서 깨어난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회식이라고 열두 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깜빡 소파에서 잠이 든 것이다.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번쩍 눈을 뜬 당신은 거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본다. 새벽 두 시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남편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저 지경으로 집은 어떻게 찾아왔는지 그 귀소 본능이 놀라울 뿐이다. 남편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씻기는커녕 옷도 안 벗고 아무렇게나 방에 쿡 쓰러진다. 남편은 쓰러져서도 한참을 중얼거린다.

당신은 남편의 옷과 양말을 벗기고 물에 짠 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을 닦는다. 수건이 얼굴에 닿자 남편은 아이처럼 찡그리고 투정을 부린다. 당신은 힘주어 남편의 얼굴을 닦는다. 남편이 뭐라고 중얼거린다. 사실 당신은 중얼거리는 남편의 말을 다 알아듣는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뭐 그런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꼭 이렇게 인사불성이 되어 들어온 남편에게 들어야 한단 말인가. 당신은 수건을 방바닥에 집어던진다. 당신은 운다. 우니까 더 서럽다. 당신은 엉엉 운다. 당신 울음소리에 놀라 깬 남편이 짜증을 부린다.

“왜 울어? 한밤중에.”
당신은 더 크게 운다. 아내가 왜 우는지 당신 남편은, 그러니까 나는 도무지 모른다. 알 턱이 없다.

김상득


김상득은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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