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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가 올림픽은 아니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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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이제 와 생각하니, 공감 가는 바가 있다.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다. 더구나 영화를 평가하는 건 스포츠와 전혀 다르다. 100m 달리기는 0.01초까지도 승부가 뚜렷하다. 반면 영화제 수상 결과는 박하게 말해 그해 심사위원단의 판단일 따름이다. 최고상을 받았다고 다른 수상작보다, 아니 상을 못 받은 영화보다 뛰어나다고 단언할 순 없다. 물론 이름난 영화제는 올림픽과 비슷한 데가 있다. 수상과 별개로, 그 무대에 서는 것만도 자랑스러운 경험이라는 점이다.

사실 그해 ‘올드보이’의 칸영화제 초청은 좀 이례적이었다. 주요 경쟁작들이 대개 영화제를 전후로 세계에 첫선을 보이는 것과 달리 ‘올드보이’는 6개월 전 이미 국내에 개봉했다. 전국 관객 300만 명이 넘는 큰 성공을 거뒀다. 여느 상업영화와 다른 개성이 뚜렷하되, 적어도 ‘외로운 예술영화’는 아니었단 얘기다. ‘올드보이’의 수상은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박 감독은 신작 ‘박쥐’로 다음 달 열리는 올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또다시 초청됐다. 이번에는 순서가 좀 다르다. 이번 주 개봉을 앞두고 지난주 칸의 초청 소식이 알려졌다. 안 그래도 기대작으로 꼽아온 영화계 안팎의 관심이 증폭됐음은 물론이다. 지난주 시사회에서 박 감독은 “벌써 상이라도 받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올 경쟁작에 역대 수상자를 비롯, 이름난 감독들의 신작이 유독 많은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올 칸에 선보이는 한국 영화는 또 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감독주간에 각각 초청됐다. 한국 영화계가 어렵다는 얘기, 예전 같은 활력을 잃었다는 얘기는 나온 지 오래다. 2년 전 칸에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전도연씨가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무렵도 그랬다. 이런 와중에 한국 영화가 경쟁부문을 비롯, 올 칸에 여럿 초청된 건 그 자체로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 영화의 주요 작가들이 건재하다는 것,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신작을 내놓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영화제가 결코 올림픽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후남 중앙SUNDAY 문화부문 기자